고등학생인 큰애는 7시 50분까지 등교하기 위해 나보다 먼저 나갔고, 8시 30분까지 등교하는 중학생 둘째는 아직 꿈나라다. 일어나지 않은 둘째에게 엄마 출근한다고 인사하고 신발을 신는다.
10분 거리의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7시 40분에 집을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슝 바람을 가른다. 전날 내린 비로 공기는 무겁지만 그리 춥지 않은 날씨다.
과일가게 아저씨들은 트럭에서 과일 상자를 나르고 있다. 며칠 전에 생긴 도넛 가게 아저씨도 열심히 도넛을 튀기고 계신다. 울 애들이 좋아하는 고로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11시 30분 오픈인 초밥집 아저씨는 벌써 장사 준비를 하신다. 참 부지런하다. 이 시간에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투성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느낀다. 이런 깨달음은 사람을 참 겸손하게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 앞을 지난다. 카페 앞에는 한 초등학생이 교복을 입고 서 있다. 잠시 뒤 노란 사립초등학교 버스가 와서 아이를 데려간다. 공립초등학교는 8시 50분 등교인데, 사립초등학교는 등교가 이른가 보다. 아니면 멀리 있는 초등학교여서 셔틀을 빨리 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온 이 아이는 나중에 어떤 모습일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성실함이 아이의 큰 장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자전거는 특성화고등학교 앞에서 신호 대기를 한다. 후드점퍼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말 걸지 마'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며 등교하는 학생이 보인다. "네 마음과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더라도 매일 아침 등교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야. 그런 멋진 일을 네가 하고 있단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교복을 입고 어깨동무를 하고 꽁냥꽁냥 걸어가는 예쁜 커플이 보인다. 이 애들은 학교 가는 시간이 참 즐겁겠지? 주변의 시선이 어떻든 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다 싸우기라도 하면.... 헤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상대방이 나와 헤어지고 다른 이성과 꽁냥꽁냥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그래도 학교만은 가 주기를 바라본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행복을 자꾸 빌어주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여유로움이 놀랍다. 자꾸만 몰아치는 파도를 넘느라 허덕이기만 했는데, 이제는 편안히 파도를 바라보고 주변 풍경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나 보다.
물론 여전히 사소한 일에 무너지기도 한다. 큰일은 잘 견뎌왔으면서 사소한 것에 무너지는 나를 보며 인간의 연약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자퇴하겠다며 방에 틀어박혀 있던 아이를 7주나 묵묵히 지켜봤으면서 요즘 들어 지각이 잦은 아이에게 잔소리하게 된다. "학교 가는 게 어디야?"라는 생각은 잔소리한 뒤에나 떠오른다. 멀리 보면 멈췄다 굴렀다 멈췄다 굴렀다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가까이 보면 자꾸만 멈춰 쉬고 있는 모습만 보인다. 영영 멈춰 버릴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네가 잘못된 게 아니라 엄마의 눈이 잘못된 거야. 엄마가 자꾸 멀리 보는 걸 잊는구나!
둘째는 내년에 중3이 될 수 있다. 참 기적 같은 일이다. 중2에서 중3이 되는 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둘째에게 중3은 한때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대로 멈춰 버릴 것만 같던 시간이 지나고 극적인 변화가 생기더니 둘째에게 중3은이제 가능한 영역이 되었다.
큰 변화가 하나 더 있다. 'E'만 정연하게 있던 성적표가 질서를 잃었다. 질서를 잃은 성적표는 둘째 스스로 변화를 추구한 노력의 결과다. 스터디 모임에 들어가고, 친구 노트를 빌려서 공부하고, 전교권 친구에게 공부 방법을 물은 둘째. 잔잔하던 성적표에 큰 파동을 만든 둘째의 힘은 다른 곳에도 펼쳐졌다.
주말 아침, 동네 이모와 배드민턴을 치러 나간 둘째 방 상태
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옷가지로 발 디딜틈이 없었던 둘째 방이 언젠가부터 깨끗해졌다.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 같은 모습은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