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2015년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책모임이 하나 있다. 동네 엄마들과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그림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 모임이다. 동네 엄마들과 가볍게 수다 떠는 모임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모임은 생각보다 체계적이어서, 매회 발제자, 사회자, 서기가 정해져 있다. 발제자가 써온 발제문을 읽고, 사회자가 모임을 진행하고, 멤버들이 자유롭게 또는 반강제적으로 의견을 말하면 서기가 이걸 기록하는 형태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지금까지의 기록이 다 밴드에 쌓여 있다는 놀라운 사실)
우리가 모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어 우리 모임이 아이들의 교육과 정서적인 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책을 선정할 때도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싶은 그림책이나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었던 그림책을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자, 우리가 그림책을 일상생활 속에서 접할 일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계속 그림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림책을 선정하는 게 어려워요."라는 의견이 있어서, 어느 날부터 청소년 도서와 성인 도서를 책 목록에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씩 책모임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읽고 매주 만나는 건 부담이 없었는데, 청소년 도서와 성인 도서를 매주 읽고 만나는 건 부담되기 시작했다. 또 그림책은 읽어 오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뚝딱 읽고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청소년 도서와 성인 도서는 읽어 오지 않으면 모임에서 할 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책을 안 읽은 멤버는 모임 날 빠지곤 했고, 책모임에 참석한 멤버의 열의도 식게 되었다.
2024년 3월 우리에게 큰 결정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 모임을 지속할 것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 우리는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기로 했다. 다들 이 모임을 지속하고 싶다는 욕망은 동일했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어떻게 마련할 것에 대해 선뜻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주제를 정해서 주제에 맞는 도서를 한 달씩 읽어 보자, 작가를 정해서 일정 기간 동안 작가의 책을 읽어 보자 등의 의견이 나왔는데, 한 멤버(사실 나다)가 대하소설 '토지'를 읽어 보자고 제안했다. 토지는 '같이 읽기의 힘'이 필요한 책이라 책모임에서 같이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반응이 의외로 괜찮았지만,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 읽으면 성취감이 장난(?) 아닐 것 같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있었기에 '토지'를 읽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는 일단 전권을 다 읽을지 1부만 읽을지 읽으면서 정하기로 했다. 1부만 읽더라도 우리 책 모임은 토지도 읽었어(!)라고 할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4월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에 <토지> 모임을 시작했다. 매주 토지 1권씩 읽는 고된(?) 삶이 시작된 것이다. 시작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토지 1권이 없는 도서관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다른 권수는 있는데 앞 권수가 없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사람들이 토지를 읽겠다고 빌려가서 반납하지 않은 책들이 있는 것인가?
시작부터 삐걱이면 안 되는데 싶어서 걱정했는데 웬걸, 우리는 먼저 읽은 다른 멤버에게 책을 받아서 보고, 후딱 읽고 도서관에 반납해서 다른 멤버가 읽을 수 있게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당근에서 중고로 구매해서 보기도 했다. 참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토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책모임에 활기가 일기 시작했다. 저조하던 참석률이 수직 상승했다. 한두 주만 빼고 참석률 100프로 기록했고, 완독률은 당연히 100프로였다. 다들 매주 1권씩 읽는 고된 삶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한 것이다. 할 말은 또 어찌나 많은지 예상 마감 시간을 훨씬 넘어 11시에 모임이 끝날 때도 많았다.(12시 다 돼서 끝날 때도 있었지?)
1부만 읽고 끝날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사람들은 더 읽기를 원했다. 자발적으로 고된 삶을 더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대. 단. 하. 다.
이런 시간을 한 주 한 주 보내다 보니 어느 날 토지 마지막 권의 책장을 덮는 날이 왔다.
정말 대. 단. 하. 다.
우리가 8개월 만에 토지를 완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총 5부로 이루어진 토지를 읽으며, 한 부가 끝날 때마다 책거리를 한 것이다. 이걸 제안한 멤버는 정말 천재다. 이 시간 덕분에 우리는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토지>에 쫓기던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또 그 주에는 그동안 못다 한 <토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해도 해도 끝이 없는 <토지> 이야기).
둘째, <토지>에는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600여 명의 등장인물과 47년에 걸친 시간, 3~4대에 걸친 집안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위에서 바라보며 울고 웃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함안댁의 죽음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죽음이라며 추켜세웠다가, 어느 날은 그래도 살아야지 임이네처럼 도망가서라도 자식들 키우며 살아야지 하며 임이네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악인 '삼수'의 행동에 분노하다가도, 삼수 주변에 좋은 어른이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삼수를 품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넓은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다.
꽃미남 용이를 흠모했다가, 엇나가는 용이를 보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며 놀랐다가, 인간이 그럴 수 있지 하며 용이를 품었다가, 환경이 바뀌면 반듯한 용이도 이렇게 바뀌는구나 하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관수에게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는 아들 영광이 있다는 사실, 자꾸만 엇나가는 영광과 괴로워하는 관수를 보며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구나 하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기도 했다.
한복과 영호, 병수와 남현의 삶을 보며, 부모의 잘못된 행동이 자식뿐만 아니라 그다음 대의 삶까지도 힘들게 하는구나, 나 정말 잘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서희의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고 싶기도 했고, 기화의 삶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으며, 방황하기만 하는 상현을 비판하기도 하고 안쓰러운 시선을 주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600여 명의 사람들을 한 명씩 읊으며 말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이다.
셋째, 우리는 가끔 한 주 쉬어 가는 여유를 부렸다. 한 멤버가 이번 주에 일정이 있어서 참석이 어렵다고 하면 불쑥 다른 멤버가 "그럼 우리 이번 주는 쉬어 갈까요?" 하고 제안하였고, 또 다른 멤버가 "좋아요."라고 바로 호응하였다. 급하게 가지 않았고, 끝까지 가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고, 중간중간 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종착지에 와 있었다.
넷째, 한 달 가까이 긴 방학이 있었다. 우리 책모임은 초창기 때부터 아이들 방학 때는 책모임을 쉬었기 때문에, 토지를 읽는 동안 맞이한 여름방학 동안 푹 쉴 수 있었다. 방학이 정말 반가웠다.(설마 나만 반가웠을까?) 토지를 읽어가는 여정도 좋았지만, 이런 긴 쉼도 필요했다. 방학 동안 다음 토지 책을 미리 읽어 놓기도 했고, 눈을 질끈 감았던 다른 책도 읽을 수 있어서 리프레시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일단 책모임에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컸다. 같이 읽지 않았다면 난 한눈팔다가 토지 읽는 것을 멈췄을지 모른다. 이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이 읽기의 힘'은 내 삶을 <토지> 중심의 삶으로 바꾸어 놓았다. <토지>를 읽는 동안 내 곁에는 항상 토지 책 2~3권이 있었다. 한 권을 다 읽으면 다음 권을 바로 읽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그래야만 책모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눈만 뜨면 토지 책을 붙잡았고, 읽고 싶은 다른 책이 보여도 눈을 질끈 감았다. 토지에 의한, 토지를 위한 삶을 산 것이다.
토지를 읽기 전과 읽고 난 뒤의 내 삶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고 났더니, 삶을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생겼다.
"이거 지금 꼭 해야 해. 지금 안 하면 큰일 나."라며 아등바등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다 길을 찾겠지, 조금 늦어도 괜찮아."라고 여유를 부리는 일이 많아졌다.
죽음 또한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지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간접 경험 하다 보니 죽음 앞에 무서워 떨기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박경리 작가님이 한 마디 툭 던져 준다.
괜찮아. 그냥 살아. 그래도 살아. 살다 보면 살아져. 그러다 여유가 있다면 좀 더 잘 살아 봐. 남들 도움도 받고, 남들 도와주며 그렇게 재미나게 살아 봐. 소꿉장난하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