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흑백 요리사> 이야기가 들린다. 음식 관련 다큐나 영상을 자주 보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흥미가 가지 않았다. 유튜브에 떠도는 백종원 씨가 눈을 가린 채 시식하는 썸네일이 불편했다. 제작진도, 콘텐츠 재 생산자들도 그 장면이 터치를 부르는 자극적인 이미지라 판단했기에 마르고 닳게 유통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 자극이 은근히 불쾌했다. 이런 거 좋아하시죠?라고 내미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그래픽 노블《까보 까보슈》의 화자는 '개'다. 그 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간의 '시각'에 의해 못 생겼다고 판단되어 물이 담긴 양동이에 빠뜨려져 의식을 잃은 뒤 쓰레기 하치장에 던져진다. '인복'은 없었으나 '견복'은 있었던 이 생명체는 그곳의 터줏대감 '시컴댕이'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시컴댕이에게서 생존의 기본을 배운다. 배움의 가장 큰 포인트는 먹어도 되는 것과 아닌 것 구분하는 법이었다.
살아남은 개는 생존의 기본을 대충 다 숙지 한 뒤, 시컴댕에게 배운 대로 여주인을 찾기 위해 쓰레기 하치장에서 도시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심한다. 지도를 보는 법도,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묻는 법도 모르지만 "도시를 찾아가는 일은 어렸지 않았다. 쓰레기 하치장 냄새와 비슷한 냄새 터널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으니까."(p.23) 드디어 도시에 도착한 그는 적당한 여주인을 발견에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녀를 뒤따라 들어간 아파트에서 도시에 대한 지식을 추가한다. "아, 이런 게 집이구나... 집이란 정돈된 쓰레기 하치장이야."
작품 속에서 개의 후각은 인간들이 도시에서 먹는 음식과 쓰레기 하치장에서 구하는 음식들이 다르지 않다고 규정한다. 생존이 중요한 개 입장에서는 인간들은 쓰레기 더미 위에 올라앉아 쓰레기 하치장에서 찾은 음식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걸 먹고사는 종족이다. 눈을 가리고 어떤 음식이 우수한지 골라내는 노력은 생존의 문제와는 별 관련이 없으니 <까보 까보슈>의 주인공이 인간들이 눈을 가리고 음식을 먹으며 품평하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대사를 내뱉을지 궁금하다.
어른들이 '음식으로 장난치는 거 아니다'라고 하셨다. 음식이 생존의 문제와 가까웠을 때의 이야기다. <흑백 요리사>는 음식으로 장난치기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예능의 흥행은 음식이 '생존'의 문제보다는 '권력'에 더 가깝게 이동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음식과 재료를 선택할 수 있고 품평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권력이다. 백종원 대표는 오랜 기간 대중을 상대로 사업체를 꾸려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중이 반응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중심 키워드로 '권력'을 사용해 예능을 제작했다. 권력을 가진 자와 그 권력을 전복시키려는 자를 정면에 배치해 수성하려는 노력과 빼앗으려는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음식을 선택하고 품평하며 음식을 먹는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생명체는 전체의 몇 % 나 될까. 시청자들은 백종원 대표의 행동과 감정에 본인을 투사하면서 권력의 힘을 간접 체험한다.
이런 권력은 핸드폰으로 <흑백 요리사>를 시청할 수 있는 인류가 누리고 있다. <흑백 요리사>를 시청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인류는 아직도 굶어 죽지 않으면 감사할 처지이다. 인류 외 동식물 200만 종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 현재를 여섯 번째 대 멸종시대라고 명명한다. 생존이 이슈인 생명체가 넘쳐나는 상황에 굳이 권좌에 앉아 눈까지 가리고 음식의 우열을 나누는 모습이 기꺼이 즐겨지지가 않는다. 일론 머스크가 그 많은 돈으로 지구를 살리는 대신 화성을 정복하겠다 나서는 걸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흑백요리사에서 여섯 번째 대 멸종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퀀텀 점프에 나도 나다 싶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려고 한다.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하면서도 해맑은 '까보 까보슈(댕댕이)'의 생명력과, 예능을 다큐로 보며 대멸종을 걱정하는 자의 진지함과, '편식'의 끝판왕을 연출하며 사람들이 고파하는 '권력'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기획을 연출하는 자들의 영리함이 만나면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