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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BU CHO Nov 05. 2020

추억으로 싸는 김밥

정성 들여 먹는 한 끼-김밥



왜 소풍을 가면 당연하게 김밥을 먹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당장 핸드폰을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왜 우리가 소풍 가는 날마다 김밥을 쌌어?" 


"왜냐고? 글쎄... 그냥 사람들이 다 싸니까? 그렇게 깊게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엄마 어렸을 때도 김밥을 먹었어?"  


"그럼~운동회 날이나 소풍 갈 때면 외할머니가 싸주셨지. 고기는 없어도 계란이랑 당근 시금치 장아찌 넣고 싸주셨어. 맛있었는데..." 


"외할머니는 김밥 싸는걸 어디서 배웠을까." 


"글쎄 그건 안 물어봐서 모르겠는데." 



어렸을 때 항상 소풍을 가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든 아이들은 약속한 듯 김밥을 싸왔다. 부모님 일이 바빠 김밥을 싸오지 못하는 애들은  김밥 전문점에서 아침 일찍 김밥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가방에 김밥을 챙겨 왔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둘러앉아  네모난 도시락통에 가지런히 담긴 김밥을 개시했다. 서로의 김밥을 교환해 먹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중에 김밥과 유부초밥을 함께 싸오는 아이의 도시락은 금세 동이 나고는 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 소풍을 추억하다 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김밥을 싸는 엄마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소풍으로 들뜬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면  집안은 참기름 냄새로 진동을 하고 있었고 고소한 냄새 따라 주방으로 발길을 향하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모든 재료들을 펼쳐 놓고 김밥을 싸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식탁이 있었는데 왜 식탁에 앉아서 김밥을 말지 않았을까?) 큰 쟁반 위에 소복이 쌓인 햄, 달걀지단, 게맛살, 시금치, 당근, 단무지가 가지런히 줄이 맞춰져 있고 고슬고슬 지은 밥은 참기름이 더해져 반들반들 윤이 났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다란 햄을 집어 먹는 일이었다. 한 줄 먹고 두 줄째 먹으려고 손을 뻗으면 엄마는 '안돼 그만 먹어 햄 부족하단 말이야.' 하고는 바로 옆에 있던 김밥 꼬투리를 집어 나의 입에 넣어줬다.  


하이킹이나 근교 여행을 갈 때 종종 김밥을 싸곤 한다. 나도 모르게 소풍의 시작은 김밥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것 같다.  갓 지어진 촉촉한 밥알 위에 참기름과 소금을 뿌리고 잘 버무린 후 손에 한 줌 쥐어 김 위에 고르게 펴 바른다. 이 고르게 펴 바르는 과정은 예쁜 김밥을 말기 위한 기초 공사와도 같은데 밥알이 너무 짓눌려도 안되고 공백이 너무 많거나 밥의 양이 너무 많아도 안된다. 손에 묻어나는 밥알들은 생각보다 다루기가 쉽지 않다. 기초공사가 마무리되면  그위로 얇게 채 썰어 볶아낸 당근, 물에 데쳐 간을 맞춘 시금치, 김밥에 빠지면 섭섭한 햄, 소금에 절여 물기를 뺀 꼬들한 오이. 아삭한 식감이 좋은 단무지 그리고 얇게 썰은 달걀지단을 아낌없이 올려준다. 김의 끝 부분을 조심스레 들어 속재료가 흘러나오지 않게 잘 부여잡고  과감하게 김밥을 말아준다. 반대편의 밥과 밥이 서로 만날 때 모든 재료들이 잘 뭉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사지하듯 꼭꼭 눌러준다. 기다란 김밥 위 반지르르하게 참기름을 바르고 슬근슬근 썰어 준비된 도시락에 차곡차곡 쌓아 주면 소풍을 위한 김밥이 완성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단잠을 깨고  요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김밥을 싸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오랜만에 도심에서 나와 울창한 숲 속이나 커다란 강가를 걷다가  허기짐이 느껴질 때 가방 속에 들어있던 도시락 속  동그란 김밥을 꺼내 먹으며 어렸을 때 느꼈던 소풍의 설렘을 느끼고 싶어서 인것같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엄마가 일 년에 두 번 우리의 소풍 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정성 들여 김밥을 싸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린 엄마의 소풍 날 때마다 엄마의 엄마는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줬고 그 기억은 엄마에게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간직했던  좋은 기억들을  자식들 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생겼으면 좋겠을 우리의 아이에게 나의 추억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나의 영상 에세이

https://youtu.be/kGQAUngix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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