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쟤 피부가 왜 저래?’
‘엄마가 관리를 얼마나 안해줬으면.’
‘나라면 절대로 저렇게 두지는 않았을거야.’
‘으이구~ 저렇게 피자나 먹으니까 애 피부가 저렇지!’
다 내 머릿속에서 하는 말들이다.
사람들이 내 아이의 피부를 보며 이렇게 비판할 것이라고 으레 짐작을 해본다. 그래서 두려웠다. 밖에 나가서 아이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비록 말은 하지 않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내가 생각했던 그 말들이 담겨있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 눈빛에는 ‘쟤는 안타깝지만 내 아이는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야.’라는 무엇의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안다. 내 아이를 바라보는 타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하니까.
솔직히, 우리는 모두 타인의 어떤 불행을 보며 ‘그렇지만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면이 아주 조금은 있지 않은가. 나 역시 나 자신에게 그런 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머릿속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한편으로는 무지한 사람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하면서도 나는 타인으로부터 나와 아이를 번갈아보며 눈빛을 받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아토피는 엄마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마치 엄마의 잘못인 듯 날 바라보는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을 아이가 느낄까봐 두려웠다. 아이가 괜히 의기소침해지고, 자신의 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렇게 한동안 괴로운 마음을 붙잡고 아이에게 연고를 발라주고, 가려움이 심해지는 밤에 긁지 않게 다리를 주물러 주고, 아이가 잠이 들면 조용히 거실로 나와 밤하늘을 보다가 기도도 조금 했다가 다시 아이 곁으로 가 옆에 누워 잠을 청한다. 혹시라도 상처 난 부위를 잠결에 긁다가 상처 부위가 더욱 커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아이가 긁으면 일어나기 위해 얕은 잠을 잔다.
그렇게 며칠 간 애를 쓰면 다시 피부가 호전이 되는 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또다시 피부는 뒤집어지고 다시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유명하다는 병원도 가보고 처방대로도 해 보았지만 쉬이 낫지 않는 아토피.
언제까지 우리 아이는 이렇게 가려울까?
아이의 목 주변에 아토피가 올라와 상처난 빨간 피부가 그대로 들어나 보였던 어느 주말, 우리는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가족단위로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고, 내 시선은 아이의 목에 집중되어 있었다. 누가 내 아이의 목을 쳐다보나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내가 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지? 뭐가 어때서? 약 바르고 시간이 지나면 나을건데.’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 나는 타인에게 완벽해보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 모습이 좋아 보이고 싶었다.
한 마디로 말해 아이가 아토피로 피부가 좋지 않은 것에 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갑자기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이런 내가 엄마라는 것이 아이에게 죄스러웠다.
이른 저녁, 아이들과 함께 집 앞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저 멀리서 한 아이가 “ㅇㅇ이 오빠!” 하며 달려왔다. 아이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한 살 어린 동생과 그의 언니이다. 배드민턴을 함께 치고 싶다고 해서 배드민턴도 치고, 축구도 같이 하며 놀았다. 그 동안 아이들은 내 아이의 목을 빤히 쳐다보지도,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함께 하는 운동에 너무 신나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두어 시간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다가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 때 다시 알았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 판단하고 평가하는 비판자의 눈으로 내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향한 비판의 눈을 버려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정말 부끄럽고 쓰고 싶지 않아서 늘 빙빙 돌거나 피하기만 했던 이 마음속 이야기를 이 하얀 워드 프로세서에 적어본다. 내 마음을 풀어헤치니 진짜 알맹이가 조금씩 조금씩 보일 듯 말 듯 하는 것 같다. 아이의 아토피가, 성난 피부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나였다.
어쩌면, 아이의 아토피로 인해 아마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아토피를 원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고 우리는 이 길을 힘을 모아 겪어 나아가는 중이다.
언젠가는 아이의 피부가 좋아질 것임을 안다.
그 과정에 너무 안달복달 하지 않기를 내 자신에게 가만히 말해본다. 이래도, 저래도 아이는 내 인생의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오늘도 힘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