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건조해서 그런가, 거미가 종종 출몰한다. 집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타고 쪼르르 내려오길래 내가 거미를 잡을 까 하다가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여기 거미 있다! 이리 와서 봐봐~’ 했더니 냉큼 달려와서는 거미를 구경한다. 거미를 키워보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거미를 잡아보려고 투명한 원통을 살 짤 들이댔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내 손길도 덩달아 거미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아뿔싸, 이제 거미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손의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통으로 거미의 다리를 꾹 눌러버렸다. 거미는 빠져나오려고 버둥대다가 죽고 말았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거미에게도 아이에게도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의 원망과 울음 섞인 한 마디 “엄마는, 거미도 못 잡고! 으앙~ 나 거미 진짜 키우고 싶었단 말이야!!” “미안해. 엄마가 거미 잡아서 너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거미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엄마도 모르게 힘을 너무 꽉 줬어. 우리 이따 나가서 거미 잡자!” 아이를 달래서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채집망을 들고나갔다.
밖에 나가니 아이는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며 신이 나서 낙엽 위에 푹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개미도 잡았다가 풀어주었다가 신이 난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거미를 잡으러 나온 것은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랬는지 거미가 없네~라는 말만 하고서는 거미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일부러 거미를 찾아서 잡아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곤충을 싫어하는데, 아이가 워낙 곤충을 좋아하고 다양한 곤충을 찾아다녀서 나도 모르게 곤충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예전 같았으면 개미나 애벌레를 내 손으로 만지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텐데 누에 애벌레나 메미 애벌레를 만지는 것은 별일이 아니게 되었다. 여전히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예전만큼 곤충을 싫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곤충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 생김새가 다르고 나름대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곤충을 들여다보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다시금 느낀다. 화장실에서 한 번씩 보이는 집게벌레는 별로 예쁘지 않은 까만색의 몸에 몸 끝이 집게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이 집게벌레가 알을 낳으면 알을 잘 돌본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다. 알을 핥아주고 보호한다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집게벌레가 보여도 함부로 죽이지 못하겠다. 거미도 자신의 알을 아주 잘 돌보는 동물이다. 어떤 거미는 알을 낳으면 그 알을 짊어지고 다닌다고 한다. 내가 볼 때에는 작은 미물에 불과한, 벌레일 뿐인데 벌레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벌레들의 한살이 말이다.
대부분의 벌레라고 부르는 곤충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곤충을 보면 못 죽여서 안달이었을까. 무섭다고, 징그럽다고 나는 그토록 벌레를 싫어했다. 벌레는 나보다 훨씬 작은데 내가 무섭다고 소리치면 벌레는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 어느 외계 행성에서 사람보다 수십 배나 큰 외계인이 있다고 한다면, 그 외계인은 사람인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아마 벌레라고, 징그럽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벌레를 보고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지 말아야겠다. 밖에서 실컷 놀다 집에 와서는 아이가 밥을 두 그릇이나 뚝딱 먹어 치웠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이부자리를 정리하는데, 침대 옆에서 아침에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거미 한 마리가 또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기쁜 마음에 “거미 여기에 또 있다~!”라고 살짝 외치니 아이는 또 냉큼 달려와서 환하게 웃는다. 거미를 잡아달라는 말에 또 죽이게 될까 봐 망설이고 있는데 때마침 구석에 있던 거미가 잡기 좋은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기다란 원통으로 거미의 주변을 살포시 누르고 확인을 해보니 앗싸! 거미가 통 안에 들어가 있었다. 뚜껑을 닫고 다시 한번 거미를 확인했다. “엄마가 이번엔 거미를 잘 잡았지?” 대답 대신 씩 웃는 아이. 아이는 거미가 들은 통을 가져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장수풍뎅이를 기르는 사육통 옆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나도 곤충 좀 잡는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