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는 왜 아이가 안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해?"
왜 좋은 것만 주려고 하냐는 동생의 가슴 픈 한마디를 들었던 그 날. 나는 내 아집에 사로잡혀, 내 고집에 사로잡혀 배려심과 사랑이 가득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모든 다짐을 버렸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주겠다는 이유로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었지만 결국 나는 아이 곁에서 방황했고,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아이 곁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아이와의 진짜 삶에 빠져들지 못했다. 훨씬 더 많이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했다.
나와 아이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아이와의 놀이에도 진심으로 재미있지 않았고, 아이의 질문에도 마음을 다해 대답하지 않았다. 즐거운 척을 했고, 성의껏 대답하는 척을 했다. 나는 '척하는' 엄마였다. 나는 또 무슨 다른 척을 했을까? 아, 학교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척도 했었던 것 같다. 사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취직하고 나서는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일을 열심히 하는 척을 했었고.. 아, 나는 왜 이렇게 척을 많이 하는 것일까? 나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나 많은 척을 하는 거지?
나는 아이의 이름을 앞세워 나 자신이 상처 받기를 거부했다.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었다.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피하기만 한다고 상처 받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오히려 아이는 말로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과하게 반응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작은 상처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니,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봐. 애들한테 문제가 있을 때 왜 이렇게 상황 파악이 안 돼? 나는 눈에 빤히 보이는데. 책을 그렇게 읽으면 뭘 해. 제대로 적용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동생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가슴을 후빈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 줄이야. 너무나 맞는 말에 단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내 실체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형편없는 엄마이자 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뿐만 아니라 내 삶에서도 두 발을 푹 담그지 못하고 한쪽 발의 발끝만 겨우 담근 채 내 인생을 겉돌고 있었다.
핑계를 굳이 대자면, 어차피 어른이 되면 무수한 상처를 받을 텐데, 그래서 아이가 굳이 어릴 때부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일부러 라도 될 수 있으면 상처 주지 않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혹여나 아이가 상처 받을 것 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위험이 될 만한 것이나 다툼이 있을 것 같은 상황은 피해버리는 것이 점점 습관이 되었다. 그쯤 첫째 아이의 떼가 심하게 늘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의 떼와 고집에 대해서 진정으로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로 그저 순간순간 상황의 모면만을 위한 행동들을 취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이는 심하게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렸다. 모두 다 엄마인 내 잘못이었다. 나의 방황과 무관심이 아이를 떼가 심한 아이로 만들고 있었다.
잘하는 척, 유능한 척을 그만두기로 했다. 좀 못해도 괜찮아, 못하면 어때,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나에게 계속 말했다. 잘 못해도 괜찮고, 그냥 못해도 괜찮다고. 안 해도 괜찮다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정해 놓고 그래도 아이가 따라오도록 아이를 통제하고 있었다.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은 없다. 나의 잘못된 믿음을 깨부수어야만 했다. 아이는 그냥 아이였고, 나는 ‘좋은 엄마인 척’을 하는 것을 그만둬야 했다. 좋은 엄마가 인생의 목표였는데 그 마음도 다 버렸다.
나는 그냥 엄마가 되기로 했다.
그동안 ‘하는 척’만 하던 내가 갑자기 그것을 하지 않으려니 이상했다. 심지어는 원래의 내 모습이 어떤지도 잘 몰랐다. 진짜 나로 살았던 적이 있었던 걸까? ‘척’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나의 에너지를 정말 필요한 곳에 조금씩 사용할 수 있었다.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집밥을 열심히 만들었고, 주방은 늘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했다.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서 나와 아이들에게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렇게 변화는 아주 천천히 찾아왔고 나의 변화에 아이들도 서서히 따라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또 잘 보이고 싶어서 잘하는 척을 하려는 내가 툭툭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척’ 하지 않고 본연의 나로 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제야 조금씩 나 자신이 편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