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면 육아가 쉬워질까?
"엄마, 밖에 나가자!" 아침에 눈을 떠서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려는데 들리는 첫째 아이의 말. 둘째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어느샌가 내복바람으로 현관 앞에 나가있다. 아침밥을 조금이라도 먹고 나가자는 나의 말에 싫다는 첫째. 그래, 산책 다녀오면 배고파서 잘 먹겠지 싶은 마음에 더 이상 밥을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침 밥을 꼭 먹어야 하는 둘째 아이를 대충 밥을 먹이고 아이들 옷을 입히기 전에 내가 먼저 옷을 입는다. 예전 같으면 머리를 감느라 시간을 보냈을 텐데 이제는 머리 감는게 뭐 대수랴. 어차피 누가 알아보지도 않는데 어떤가, 누가 알아보면 또 어떻고 싶어 질끈 머리를 묶고 나갈 채비를 한다. 높은 하늘과 포실하게 뜬 하얀 구름이 우리를 맞이한다.
역시, 밖에 나오길 잘했다. 집 앞 작은 공원으로 나오자마자 신나게 뛰는 아이들. 빨갛게 익어가는 이름모를 열매를 바닥에서 열심히 줍고 나뭇가지도 몇 개 모아서 모래바닥에 놓아 둔다. 어제 누가 놀다가 그대로 두고간 플라스틱통에 모래를 집어 넣고 아까 주운 빨간 열매와 나뭇가지로 장식을 한다. 마지막으로 새 깃털 몇 개를 주어와 꽂으면 완성! 이렇게 놀다보면 30분,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이런 놀이를 집에서 어떻게 하나. 이제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신나게 탄다. 17개월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를 따라 일어서서 그네를 탄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눈을 떼지 않고 그네를 꼭 잡아주는 것은 나의 몫이다.
한참을 모래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가 배가 고파져서 슬슬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첫째 아이는 '조금만 더!'를 연신 외친다. '타고 싶은 놀이기구 하나만 더 타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열 번 쯤은 말한 뒤에야 겨우 집으로 들어간다. 집에 들어서니 아이들 신발에 모래가 한가득이다. '밖에서 좀 털고 들어올걸'하는 후회가 들지만 이미 현관은 모래투성이다. 대충 모래를 털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새까매진 손이며 발을 씻는다. 어제 먹고 남은 국을 다시 한 번 끓인 다음에 밥을 말아 한 그릇씩 후루룩 먹는다. 아, 꿀맛이다. 배도 부르고 잠이 솔솔 오는지 둘째 아이는 눈을 비비더니 이불위로 누워 금새 잠이 든다. 둘째 아이가 잠을 자는 동안 한껏 기분이 좋아진 첫째 아이와 책을 읽고 함께 간식을 먹는다.
여전히 집안은 모래 투성이다. 현관에서부터 화장실까지 옷에서 톡톡 떨어진 모래 알갱이들이 발에 서걱서걱 밟힌다. 둘째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청소해야지. 그래, 그깟 모래가 뭐 대수인가. 치우면 되지. 산책을 하면서 내 마음에 콕콕 박힌 모래 알갱이들을 쏙쏙 빼고 왔으니 괜찮다. 아무 생각 없이 모래를 쓱쓱 쓸어담아 쓰레기봉투에 툭 버린다. 산책을 꾸준히 하기 전의 나는 집안일이 지겨웠고, 매일 반복되는 아이들과의 소소한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어지러진 집안을 청소하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며칠동안 미루곤 했었다. 거실 바닥을 한 번 쓸어서 버리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었다. 그런데, 매일 산책을 하면서 더 이상 일상이 지겹고 귀찮지 않게 되었다. 이제 산책을 하지 않는 하루는 생각할 수 없다. 산책을 하고 나서 집에 들어와 아이들을 씻기고, 모래를 치우는 것이 처음에는 힘이 들고 귀찮아서 산책을 띄엄띄엄 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그런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산책은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육아에 지친 마음을 산책으로 회복한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아이들은 그런 나의 기분을 따라온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나뭇잎을 보며 계절을 느낀다. 땅위의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작은 곤충들은 다가오는 겨울을 위해서 바쁘다. 어찌나 부지런한지, 한번씩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옆에 누워서 뒹굴거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붉게 물드는 나뭇잎을 보면서 내 마음도 함께 물들어간다. 짙어지는 계절을 따라 내 마음도 깊어진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하늘의 넓음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 아이들에게 넓은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도 해본다. 어쩌면, 나를 위해서 아이들과 산책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산책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