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10 아들, 좋은 남자가 되자

아들아, 엄마가 소싯적에 나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단다

by 글짓는맘


매력적이다, 누가 봐도 호감이 간다. 돈도 많고 좋은 외제차를 탄다. 이런 사람은 날 안 만날 것 같은데, 왠지 나랑은 좀 안 맞을 것 같은데 내가 좋단다. 진짜로? 한마디로 ‘멋진’ 그 사람은 내가 좋다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 만나지..?’라고 조금 걸렸던 것은 나이였는데 그때 스무 살이었던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다. 열 살보다 나이가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어리니까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이겠지 싶은 마음에, 또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호기심도 발동해서 한 번 만났는데, 역시 그 만남은 한 번으로 끝날 수 가 없었다. 점점 그 사람에게 나는 빠져들고 있었다. 좋다는 표현보다 빠져든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좋음 이상의 감정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했는데 나는 어느새 그 사람에게 폭 빠지고 말았다. 그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순진했을까.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남자를 만난 나는 너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만났던 것이었을까. 그 사람은 내가 자신에게 폭 빠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발을 서서히 빼내기 시작했다. 바로바로 되던 연락이 점점 되지 않았고, 내가 연락을 할 때 보다 그 사람이 내게 연락할 때만 연락이 되었고,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를 귀찮아했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나는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어떤 사람인지 너무도 잘 알겠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내게서 마음이 점점 멀어져 가는 그 사람이 야속하기만 했고, 어떻게든 내 옆에 붙잡아 두고 싶어서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들을 얼마간 보내고 나니 나는 어느새 더 이상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습관처럼 그 사람에게 집착을 하고 있었다. 집착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인연의 끈을 놓기로 했고, 놓아버렸다. 그렇게 끝이 났다. 애초에 인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나의 욕심으로 그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전부 헐어버린 것 같은 나의 마음에 새 살이 돋기 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나의 아이들이 크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어설픈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괜한 상상을 하게 하거나 여지를 주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겠지. 어리다고 아이들의 사소한 감정을 무시하지 않아야겠다.


한 번은 한강 공원에 놀러 갔다가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려고 차에 탔는데, 첫째 아이가 ‘엄마, 나 지금 슬프니까 창문을 닫고 슬픈 노래 좀 틀어줘.’라고 하는 것이었다. ‘슬프구나. 왜 슬프지?’라는 나의 물음에 아이는 한강 공원에서 더 오랫동안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슬퍼서 슬픈 노래가 듣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 듣던 라디오를 켰는데 슬픈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광고 음악 소리에 아이는 ‘슬픈 노래 좀 틀어줘! 왜 슬픈 노래가 안 나오는데! 그리고 창문 좀 닫아줘! 지금 슬프단 말이야!’라고 짜증을 냈다.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귀여워서 아이의 슬픈 감정에 공감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기려고 했던 나 자신을 돌아봤다. 다시 라디오의 주파수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가 아이가 원하는 슬픈 노래가 나왔고, 아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눈을 감고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로 상대방의 희생이나 노력을 요구한다면 그건 사랑도 뭣도 아니다. 그건 본인이 결정하는 거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건 학교 다닐 때 알려주지 않는 걸까?

좋은 남자 나쁜 남자 구별하기, 진짜 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알아보기. 이건 정말 인생 필수 교과목인데 말이다. 아,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어렸을 때 만나던 그 사람은 나쁜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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