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08 슬기로운 독박육아

by 글짓는맘

머리감을 시간을 놓쳐서 머리도 못 감고 대충 돌돌 말아 묶은 머리, 쌩얼, 색이 바래고 보풀도 조금 일어난 라운드 티셔츠를 입은 나의 등에는 한쪽 얼굴을 기댄 채로 쉭쉭거리는 숨소리만 들리는 둘째아이가 업혀 있다. 잠이 들었나 싶어 화장실 거울로 슬쩍 비춰보니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쓱 웃는 아이. 나도 같이 씩 웃는다. 혼자 놀고 싶어 하는 첫째아이에게 둘째가 같이 놀고 싶어서 자꾸만 옆에서 서성거리고 멋지게 만들어 놓은 블록을 무너뜨려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안되겠다 싶어 나는 둘째 아이를 들쳐 업고 하던 저녁 준비를 마저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겨우 잠잠해지는 집 안. 밥이 다 되어가는 소리와 국이 끓는 소리가 제일 크게 들린다. 남편이 야근을 해서 잠자는 시간 빼고 13시간째 아이들과 붙어있는 중이다.



내가 오늘 아이들에게 소리를 몇 번 질렀더라? 밥이 다 되고 아이들과 밥을 먹었는데, 아이들 밥을 먹이면서 갑자기 피곤해져서 나는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 밥을 다 먹이고 나서 고개를 쓱 들어보니 장난감으로 가득해서 앉을 자리도 없어 보이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을 보니 한숨이 나오고 설거지를 할 힘도 없어서 그릇만 대충 물에 씻어서 그대로 뒀다. 아이들 크는 거 잠깐이라던데, 몇 년만 힘들면 괜찮다는데, 나는 그 몇 년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징징인가? 아니, 사실 누구에게도 징징 거린 적은 없지만 힘에 부쳐서, 아이의 떼와 짜증에 너무 짜증이 나서 아이를 쏘아붙이기도 했다. 아이 니까 그럴 수 있는 건데, 왜 나는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마음이 좁아져서는 아이를 혼냈을까?



혼자 육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 아이들의 감정에 휩쓸리고, 내 감정에 휩쓸려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을 견뎌 내야 한다. 고통으로 몸무림 치지 않고 우아하게 육아를 하고 싶었다. 정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는데 꺼내어 쓸 줄을 몰랐다. 그냥 요령껏 하는 것이었다. 밥도 아이들 먹을 때 내가 먼저 조금이라도 먹거나 같이 먹고, 아이들이 싸울 것 같으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후딱 돌려 아이들의 화를 돋우지 않고, 건전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살살 꼬셔서 최대한 잘 지낼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자꾸만 아이들에게 날것의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육아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요령껏’하는 것이다. 책만해도 억지로 읽혀서 책을 읽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엄마의 의도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뭐 거창한 것을 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엄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깔깔거리니까 아이들의 이름을 접착식 메모지에 써서 내 얼굴에 붙이고 그 종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얼굴을 이리 찡그리고 저리 찡그리니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그러면 어느새 켜져 있던 티비가 조용히 꺼져도 아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거 안 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활동을 하게끔 유도해서 아이들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된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순간 순간 올라오는 욱하는 나의 감정을 내려놓으면서 아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살피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이왕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슬기롭고 현명하게 잘 보내야 하는 것을. 아이들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하루 종일 같이 있다고 막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앞에서 행동하듯이 아이들 앞에서도 어느정도 조심스럽게 예의 있게 대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 나중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희들 때문에 엄마가 이걸 포기 했어.’ 가 아니라, ‘너희들 덕분에, 너희들이 있어서 엄마가 이런 꿈을 꿨고 이런 걸 해볼 수 있었어. 고마워.’라고.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의 아이들이 있는 그곳이 천국입니다.’ 너무 맞는 말이지만 현실 육아에서, 일상 생활에서 천국을 느끼기란 참 어렵다. 그래도 이왕이면 잘 살아가야지.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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