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09 밥 좀 먹어!

밥을 안 먹겠다고 하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by 글짓는맘


“밥 먹자. 이제 밥 먹을 시간이야. 식탁에 와서 앉자.”

“싫어! 나 지금 놀고 있단 말이야. 지금 안 먹을래. 배 안 고파.”

“밥 먹고 놀자. 밥 먹는 시간에 밥을 먹어야지. 어서 와.”

대꾸하지 않는 첫째 아이.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 밥 안 먹으면 이따 저녁 먹을 때까지 간식 없어.”

“아이 참. 알겠어. 먹을게.” 뚜벅 뚜벅 질척 질척 식탁으로 힘겨운 발을 떼면서 아이가 걸어온다.

식탁 앞에 앉아 한숨을 푹 쉬면서 콩이 든 밥을 보고는,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밥이 아니야. 안 먹을래. 콩 다 빼줘.” 한다.

“콩도 먹어야 머리도 좋아지고 키도 크지, 골고루 먹어야 달콤한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거야.” 는 내 말에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이 밥을 한 숟갈 뜬다. 그러더니 식탁에 없는 반찬만 먹고 싶다는 아이.

순간 열이 뻗쳐서,

“그냥 먹지 마. 안 먹어도 돼.” 으악,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아이에게 하면 안 된다는 말 ‘먹지마’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시무룩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이 더 안 좋아진 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도 했고 아이에게 더 심한말을 할까 봐 그러지 않으려고 내 밥을 입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목이 막혀서 국물도 몇 숟갈 퍼먹으면서.



‘때가 되면 먹겠지. 정말 배가 고프면 먹겠지.’ 안다, 다 안다. 하지만 자꾸만 반찬 투정을 하고 밥 때만 되면 밥을 안 먹겠다고 하는 아이 앞에서 불쑥 건드려지는 나의 속상한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힘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점점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이 힘이 들었고, 반찬이며 국이며 조금이라도 새롭게 해서 아이의 입맞에 맞춰보려고 했던 그 노력들을 그만 두고 싶었다. 밥을 먹던지 말든지 신경도 쓰기 싫은 지경까지 되었다. 어느 날엔가 친청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나는 아이에게 밥 먹이는게 일이라는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어떻게 이것만 먹고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밥을 안 먹어도 애들은 다 크더라. 잘 먹는 날도 있잖아. 그러니까 밥 먹는것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 너도 뭐 해주면 잘 안 먹어서 해주기 싫더라.’ 라고 하셨다.



나는 아이에게 밥 먹는 것을 너무 강요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불편한 분위기이면 얼마나 밥을 먹기가 싫은가? 나도 모르게 밥에만 집중을 해서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보이는 상황에만 집착을 했다. 아이가 밥을 먹기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밥을 왜 안 먹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저 지금 내가 차려준 밥을 안 먹는 그 상황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밥을 먹는 시간이 되면 나는 늘 스트레스가 되었고, 밥을 하는 것도 싫었고, 그럴수록 아이는 밥을 더욱 먹기 싫어했다. 그렇다고 아이가 늘 밥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산책을 다녀오거나, 어쩌다 한 끼를 건너 뛰면 그 다음 끼니는 밥을 아주 잘 먹었다. 아이가 밥을 잘 먹을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주지도 않고, 밥을 먹지 않는 아이 탓만 하고 있었다. 밥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아주 많이 배가 고파야 밥을 먹는 아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않고 내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고 ‘쟤는 밥을 안 먹는 아이’라고 정해버린 내 잘못이었다. 밥을 먹을 때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밥 먹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도록 더욱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엄마인 나의 몫이었는데 말이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아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먹고, 먹지 않음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기로 결심했다. 분명히 배가 고플 것 같은데 밥을 먹지 않겠다는 아이를 보면서 저러다 키가 잘 크지 않을까봐, 배가 고플텐데 하는 걱정은 되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존중 받음’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자꾸 부모의 마음대로 통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아이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을 다양한 육아서에서,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된 후로는 더 이상 아이에게 억지로 밥을 먹게 할 수 없었다. 밥을 먹고 싶지 않는 그 마음을 알아주고, 그래도 조금 먹어보라고 권유해보고 그래도 싫다고 하면 그냥 말 일이었다. ‘배고프면 먹겠지.’라는 마음 하나만 마음속에 남겨뒀다.



어느 주말 점심, 밥을 먹으려고 보니 밥이 세 명이 겨우 먹을 양만 밥솥에 남아있었다. 볶음밥을 하려고 휘리릭 후라이판에 기름을 두르고 야채를 조금 넣고 달달 볶은 다음 밥을 넣고 함께 볶았다. 역시나 밥을 먹지 않겠다는 첫째 아이. 아침 밥을 먹고 나서 이것 저것 간식을 많이 먹어서 입맛이 없댄다. 그래, 잘됐다. 밥이 부족했는데 내가 밥을 조금 더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밥을 안 먹는다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배가 좀 많이 고팠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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