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아이의 나의 십 년 후를 그려본다

우리의 십 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by 글짓는맘

나의 외할머니는 마흔여덟에 하늘로 가셨다. 그때의 나의 엄마는 육 남매의 첫째로 20대 중반이었고, 결혼을 해서 내가 돌이 막 지났을 때였고, 막내 외삼촌은 초등학생이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보내고 나서 나를 안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안겨서 젖을 먹고 있던 나는 엄마의 눈을 보며 따라서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눈물이 괜히 많다. 이제 십 년 후면 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전 해의 나이가 된다. 문득 나의 십 년 후가 궁금해진다.


나의 십 년 후를 알기 위해서는 나의 십 년 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나의 십 년 전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십 년 전에 스물여섯이었고, 회사생활을 열심히 했고 지금의 남편과 한창 연애 중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여자로 살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부당함과 차별이 싫어서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아들을 두 명 낳고 싶었는데, 정말 그대로 되었다. 내가 또 뭘 했더라, 아 일하고 싶었던 곳에서 마음껏 일을 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열정을 다했고, 열심히 했고, 추억 또한 깊다. 그리고 연애 중이었던 남편과 결혼을 했고, 난임의 시간들을 겪으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로 산지 5년 차.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금부터의 내가 경험하는 시간들이 십 년 후의 나를 만들어 줄 것이기에, 시간에 나를 맡기고 경험에 나를 맡긴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에 나의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쏟아부으면, 간단히 말해서 내가 원하는 그것에 나 자신을 쏟아부으면 뭐가 돼도 될 수밖에 없다. 설사,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후회가 없다. 누군가 그랬다. 실패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능력이 되니까 실패를 하는 거라고. 언제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나의 끝없는 의심과 두려운 마음뿐이다. 나의 10대가 나의 20대를 만들었고, 나의 20대가 나의 30대를 만들었듯이 나의 30대가 나의 40대를 만들 것이다. 완성된 그 무엇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나의 것을 찾고 나 자신을 쏟아부을 거다.


십 년 후면 아이들은 모두 10대가 된다. 나의 10대, 아이들의 10대는 어떻게 다를까? 사춘기를 겪겠지? 아이와 부모의 사이가 좋으면 사춘기도 살짝 왔다 간다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 엄마, 이것 좀 해줘.’라는 말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겠지? 하도 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녀서 ‘그만 좀 쫒아와!’라고 늘 말하곤 하는데 이것도 엄청 그리워지겠지? 또 뭐가 그리워질까? 십 년 후에 나는, 아이에게 무엇이 그리워질까? 하루 종일 두 아이와 복닥거리느라, 살림한다고 몸이 힘들고 지쳐서 팔이 아프다는 핑계로 안아달라고 앵앵거리는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한 거, 놀아 달라는 아이에게 ‘잠깐만 기다려’라로 말한 거,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했는데 아이를 윽박지르면서 보냈던 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며칠쯤 안 가도, 안 다녀도 괜찮은데, 아무 문제없었는데 나는 무엇에 그렇게 쫓기듯이 아이를 몰아세웠을까.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아이를 기다려줘야 하는데.. 아이를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그 쪼그만 아이한테 뭐 이렇게 기다리라는 말을 많이 하는 건지, 나 원 참. 그냥 그때 그때,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면 바로 달려가 줄 걸. 지금 하던 거 잠깐 손에서 내려놓고 아이 눈을 한 번 더 쳐다봐 줄 걸. 이제 곧 여섯 살이 되는 아이는 더 이상 내게 같이 놀자고 조르지 않는다. 짧았는데, 같이 놀자고 했던 시간들.


아이가 크면 클수록 나는 더 많이 후회할 것이고 아이는 점점 내게서 한 발, 한 발 자국 씩 걸음을 뗄 것이다. 내 발인지 네 발인지 헷갈리는 지금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멀어진 아이를 볼 때면 살짝 어색하기도 하겠지. 근력 운동을 해야겠다. 팔 근육, 다리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안아달라고 할 때 실컷 안아줘야겠다. 근육은 바로 안 붙으니까 파스를 어깨에 덕지덕지 붙이고서라도 아이를 안아줘야겠다. 이러면 후회가 하나쯤은 덜어질까 싶다. 앞으로의 나의 십 년, 그리고 아이들의 십 년, 지금을 돌아볼 때 후회보다는 ‘그래도 좋았던 게 더 많았지.’라고 서로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웃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지금, 아령을 한쪽 손에 들었다. 열다섯 번씩 두 세트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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