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알잖아, 우리 애가 좀 별난 거

아이의 고집이 센 건 부모때문입니다

by 글짓는맘

애가 고집이 좀 세단다. 애들 데리고 한 번 보자는 나의 말에 애가 별나서 어디 멀리를 나가지 못하겠다는 친구의 대답. 놀이터에 한 번 나가면 집에 오는 길이 그렇게나 힘이 든다고 한다. 친구의 아이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자고 하면 땅바닥에 앉아 무릎을 대고 무릎으로 걷는다고 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놀면 그 자리에서 두세 시간은 거뜬 없는데 집에 가는 게 역시나 골치라고 한다.


아이들이 4살 되던 해의 여름,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오이도에 갔다. 40분쯤 지하철을 타야 하는 거리라 아이들이 혹시나 지루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되는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으로 가방 안에는 물과 간식을 잔뜩 담아 지하철에 탔다. 다행히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많지 았았고, 군데군데 자리도 비어 있었다. 네 살배기 두 아이들은 지하철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신기하단 듯이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했다. 아이들이 뛸 것 같으면 간식도 살금살금 입에 넣어주면서 그렇게 오이도역에 도착했다. 실컷 놀고 쌀국수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집에 가는 길에 떼를 부릴까 봐 걱정을 했던 친구의 생각과는 달리 친구의 아이는 너무 얌전하게 지하철 의자에 잘 앉아있었고, 안아 달라고 칭얼대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피곤했는지 잠이 금방 들었다. “이렇게 잘 노는데 뭐가 고집이 세~ 애들 한 번씩 고집도 부리고 다 그렇지.”라는 나의 말에 너는 우리 아이를 겪어보지 못해서 모른다는 친구의 말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 대해서 남들의 말이 내 생각인 듯 판단할 때가 있다. 나의 첫째 아이가 예민하고 까탈스럽다고 돌보기 힘든 아이라고 시어머니가 말씀하시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울면 내가 바로 반응을 해줘서 아이가 잘 기다리지 못한다고 나를 책망하는 듯한 말을 친정엄마로부터 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내가 잘 돌볼 수 있어요.”라고 반응하면서도 내 주변 친구들이나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의 아이에 대해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애가 좀 예민한 편이라서요..”라는 말이 내 입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가 고집이 세요, 아이가 예민해요, 아이가 참을성이 없어요, 아이가, 아이가, 아이가…


이 말들은 당사자인 아이들이 붙인 말이 아니라 그 아이를 돌보는 엄마나 주변 사람이 붙인 수식어들이다. 자신의 아이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아이는 점점 더 아이의 이름 앞에 붙여진 수식어처럼 되어갈 뿐이다. 내 아이가 고집이 세다고 말을 하는 것은, 엄마인 내가 무의식 중에 아이가 고집이 세지도록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그저 아이의 성향이, 성격이 원래 그렇다고 아이를 규정지어버리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첫째 아이를 보고 예민하다고 말하는 것이 왜인지를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나와 아이만이 알고 있는 그 이유가 있다. 아이는 아기 때부터 아토피가 있어서 ‘촉각’에 예민하다. 피부가 약해서 로션 하나를 바를 때에도 따가운지 따갑지 않은지에 대해서 아이가 세심하게 잘 느끼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알레르기가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낯선 음식을 잘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예민한 건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은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아이의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을 가지고 보이는 그것이 아이의 전부인 듯 아이를 판단한다. 그래서 아이의 피부가 좀 안 좋을 때에는 한동안 시댁도, 친정에도 일부러 방문하지 않기도 했었다. 괜한 말을 들어서 나도 아이도 상처 받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이렇다’라고 말을 하기 전에 아이의 특정 행동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원인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양육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다. 나의 시선에서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의 행동이 한 번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하게 되면 그 뒤로는 계속 내 기준으로 아이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된다. 부모의 기준에서 이상하고 잘못되어 보이는 행동을 했던,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상황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별난 아이는 부모가 만든다. 내 잣대로, 내 아이라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착각했던 아이에 대한 모든 나의 판단을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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