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나의 아이에게 남겨줄 것은

당신은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나요

by 글짓는맘


언젠가, 지금은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 겪게 될 헤어짐의 순간에, 언젠가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될 나의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를 대신해서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존재하게 할 수 있을까. 아이의 동화책 중에 ‘매미’에 대한 책이 있다. 매미는 5년에서 7년 동안 땅 속에서 살다가 엉금엉금 땅 위로 기어 나와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서 마지막 하물을 벗고 어른 매미가 된다. 암컷 매미는 수컷 매미와 짝짓기 후에 알을 땅 속에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그렇게 금방 죽는 매미를 보고 짝짓기를 하지 않은 친구 매미가 너무 슬퍼하니까 알을 낳기 직전의 매미가 이런 말을 한다. “죽는 게 다시 사는 거야.” 땅 속의 매미 알에서 아기 매미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친구 매미는 알을 낳고 죽었던 매미의 말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매미는 어느 더운 여름날에 알을 기쁘게 낳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의 아이에게 '삶은 좋은 거야. 삶은 힘들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해.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 세상에 헛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모든 것을 놓고 싶은 그 순간에 삶을 붙잡을 수 있는 마음을 남겨주고 싶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집의 사정이 급격하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한 번 빚더미에 오르니 그 끝을 알 수 없었고 가족 모두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었다. 그동안의 평화로웠던 분위기의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집 안은 혼란과 분노로 가득 찼다. 가족 모두 따로따로 각자의 할 일만 했었다. 대화를 하면 다툼으로 번지기 일쑤였고, 서로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함께 살고 있었지만 따로 살았고 각자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 돈이 없음과 혼동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지쳐갔다. 삶에 대한 기쁨이 없다는 생각을 믿었던 탓에 좋은 것을 봐도, 어쩌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하나도 좋지 않았고 맛있지도 않았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울때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랬고,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이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할 때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정말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었던’ 그런 순간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이렇게 살 거면 살아서 뭐 하냐'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순간에 나를 붙잡았던 것은 돈도 아니었고, 일도 아니었고, 생명 자체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살아야지.’ 이 한마디가 내 삶을 붙잡았고, 나를 살렸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쨌거나 나는 살아야 했다. 이왕이면 잘 살아보고 싶어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했다. 그 당시에는 일상이 너무 지겹고 괴로워서 작게나마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해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퇴근길에 동생이 먹고 싶다고 했던 햄버거를 사 가고, 주말이면 가끔씩 근교로 외출을 했고, 성당에 가서 기도도 하고 좋아하는 물건을 한 번씩 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런 활동들이 소확행(=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었다. 보통의 날들은 괴로운 일상이었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기쁨을 가끔씩 느끼면서 ‘그래, 이 맛에 사는구나.’를 생각하며 그 시간들을 견뎠다. 시간이 점점 지나자 짙은 구름이 지나가고 해가 나오듯 아주 조금씩 우리 가족에게 햇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아이들에게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그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쩌다 나는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나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습관, 마음의 근육이 생긴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뭐라도 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보여줘야겠다. 내 삶에 더욱 충실해야지. 나는 오늘도 아이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고 아침밥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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