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얘가 정말 왜 이래?

나의 아이에 대해, '뭐 이런 애가 다 있냐'고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by 글짓는맘

"얘가 밖에서 정말 왜 이래?"


내 아이지만 정말 나의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뭐 이런 애가 다 있어?’라는 말이 저절로 불쑥 올라온다. 차마 내뱉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아이가 외부에서 내 눈에 이상해 보이는 그런 행동을 할 때에는 ‘밖’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나의 본성을 숨긴 채 아이에게 은근한 협박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아마 집에서 그랬다면 나는 냅다 아이를 향해 소리를 쳤을 것이다. 아이는 그런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밖에서 한 번씩 내 속을 뒤집는다.


“재 내가 낳은 애 맞아?”

집에 와서 아이가 왜 그랬을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아이는 집에서 마음껏 할 수 없는 활동들을 밖에 나가서 실컷 해보고 싶었을 것인데 나는 그런 아이를 위험하다는 이유로 몇 가지의 행동을 막았고 아이는 그래서 떼가 났다.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부리는 그 순간에 나는 정말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아이와 내가 한순간에 ‘이상한 모자’로 평가되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마음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여기 밖이야. 어서 일어나. 그리고 여기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녀서 자전거랑 씽씽이를 같이 탈 수 없어. 공원 안에서 타자.’고 조용하고 무서운 목소리로 아이의 기를 눌러버렸던 것이다. 아이는 하는 수 없이 땅바닥에서 일어나서는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놀이터로 걸어 들어갔다.


다섯 살 아이의 어깨가 축 처져서 땅에 질질 끌릴 지경이었다.


“자전거랑 씽씽이랑 같이 타고 싶었구나. 그러면 진짜 재미있었을 텐데, 여기서 못 탄다고 해서 많이 아쉽구나. 그런데 엄마가 여기에서는 너랑 동생을 둘 다 보면서 이걸 타기가 어렵네, 횡단보도도 있고, 오토바이도 많이 지나가고 말이야. 우리 저기에 차 없는 곳으로 가서 타보면 어떨까? 그럼 엄마가 동생 잠깐 내려놓고 이거 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아이의 떼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별일 아닌 듯이 말을 해줬다면 아이의 반응은 어땠을까?


항상 상황이 끝나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많은 책과 강의를 통해서 배웠으면서 정작 나는 아무것도 실천한 것이 없다. 아주 잠깐이라도 아이가 자전거랑 씽씽이를 같이 타볼 수 있게 도와줬으면 아이는 아마 마음이 조금은 풀렸을 것이다. 아이의 욕구를 아예 해보지도 못하게 원천 차단시켜버린 내가 잘못이었다. 가끔 나의 이거 하자~라는 나의 말에 아닌 이렇게 되물을 때가 있다. “엄마, 그럼 내 마음은 없어? 내 마음은 없는 거야? 엄마는 왜 엄마가 하고 싶은 것만 하자고 해?”


부모는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안내가’가 되어야 한다.


내가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갔는데, 안내를 해 주는 사람이 무섭고 내가 어디 가보지도 못하게 통제만 한다면 나는 너무 싫어서 안내자를 바꾸고 싶어 할 것이다. 나는 왜 자꾸 아이에게 무서운 독불장군이 되는 것일까.


아이의 행동은 자연스럽고, 떼를 부리는 그 순간도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순간들을 어른의 힘으로, 또는 “얘가 몇 살인데 아직도 떼를 부려?”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아이의 마음을 눌러버린다면 그 아이는 마음 한 곳이 쪼그라든 채, 찌그러진 마음으로 크지 않을까? 그럼 그 아이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될까?


결국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독립된 한 사람으로 크는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아이의 완성된 멋진 모습을 기억하자. 그 모습에 집착은 하지 말고. 지금 내 눈앞의 꼬맹이가 작은 실수를 하고 떼를 부리는 것이 그 아이의 전부인 듯 아이를 윽박지르지 말자.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아이의 마음과 행동을 품어주고 아이에게는 언제나 조곤조곤 이것저것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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