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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작가 Dec 20. 2020

먹는 것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이야기

당신은 "밥 잘 먹었습니다"를 말하시나요?

오후 1시 10분. 오전 느지막이 나갔던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다. 배가 고플 아이들에게 간단히 먹을 것을 주고 부지런히 점심 준비를 했다. 메뉴는 ‘국수’. 아이들은 소고기 간장 국수, 어른들은 소고기 야채 비빔국수.


국수를 끓일 물을 큰 냄비에 촬촬 받아서 불을 올려놓고, 미리 얼려 놓았던 다진 소고기를 냉동실에서 꺼내고, 상추를 씻고 양파를 쓱쓱 썰고 상추도 먹기 좋게 작게 썰어 놓는다. 작은 냄비를 달구고 해바라기 오일을 휙 두른 다음 썰어 놓은 양파를 한 줌 쥐어다 살짝 볶는다. 살짝 녹은 소고기도 냄비에 넣고, 청주도 조금 넣고 볶다가 간장 한 스푼, 설탕 반 스푼을 넣고 소고기가 다 익을 때까지 달달 볶는다. 고기가 다 익으면 불을 꺼 놓고 잠깐 냄비에 그대로 둔다.


마침 국수를 끓일 물이 팔팔 끓고 있어 얼른 국수를 한 손에 가득 차게 쥐고 끓는 물에 휙 둘러 넣는다. 국수를 넣은 물이 바르르 끓어오르면 찬 물을 끼얹길 두어 번, 면을 몇 가닥 집어 먹어 국수가 다 익었는지 확인하고 국수가 입에 알맞게 잘 익었으면 인덕션의 불을 끄고 찬물로 직행한다. 미리 싱크대 안에 넣어 놓은 채반 위로 찬물을 콸콸 틀어 놓고 뜨거운 냄비를 통째로 채반 위로 쏟아붓는다. 갑자기 찬물을 만난 국수는 놀라서 살짝 얼어붙었는지 다시 맛을 본 국수의 면발은 쫀쫀하고 탱글탱글 해졌다.


채반을 흔들어 면의 물기를 탁, 탁, 탁, 탁, 털어내고 면을 대접에 조금 덜어서 아까 볶아 놓은 소고기와 양파를 큼직한 숟가락으로 두어 스푼 면 위로 퍼담는다. 참기름도 좌르륵 넣고 면과 함께 비빈다. 아이들을 불러 식탁에 앉히고 한 젓갈 먹어보게 하니 맛있다고 연신 외치면서 금세 한 그릇 씩 비워낸다. 아이들이 국수를 먹는 사이 나는 우리 부부의 국수 두 그릇을 후다닥 준비한다. 면을 큰 냉면그릇에 덜어내고 소고기와 양파를 듬뿍 면 위로 얹고, 아까 썰어 놓은 상추와 양파를 면 위로 수북이 덮는다. 달콤하고 매콤한 비빔장과 참기름을 수북이 쌓인 야채 위로 휘리릭 두르고 식탁에 내어놓으니 시계는 벌써 1시 40분이 되었다.


“배 많이 고팠지? 얼른 먹어.” 남편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별 말도 하지 않고 금방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나도 배가 고파서 얼른 후루룩후루룩 한 그릇을 먹었다. 나보다 국수를 먼저 다 먹은 남편은 그릇을 들고일어나서 싱크대에 집어넣고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풀썩 눕는다. 


평소 같았으면 밥을 먹고 “잘 먹었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오늘따라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편을 보고 조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고 이해를 하면서도 나는 식구들이 배가 고플까 봐 집에 들어오자마자 앉을 시간도 없이 엄청 바쁘게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런 나의 수고를 몰라주는 것만 같아서 남편에게 왠지 조금 서운해졌다. 


물론, 내가 남편에게 ‘밥을 잘 먹었다’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식사를 하느라 들인 수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밥 잘 먹었어.”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나의 수고, 노력을 ‘밥 잘 먹었다’는 말로 인정받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말일지라도, 그래도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밥을 할 맛’이 난다.

‘내가 한 밥이 맛있구나. 저녁에는 뭘 또 맛있게 해서 먹을까?’ 하고 기운이 난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그 밥을 만든 사람의 수고스러움에 대해 한마디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밥 잘 먹었습니다.”는 그러니까 ‘밥상머리 상도’라고 해야 할까? 

다음 끼니에는 밥을 먹고 내가 먼저 말해야겠다. “밥 잘 먹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내가 말해줘야겠다. 

‘밥 잘 먹었어. 밥 하느라 애썼어.’ 내가 먼저 이렇게 말하면 남편과 아이들도 합창하듯이 나를 따라 말할 것이다. “밥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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