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 회사가 AI의 핵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 도서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by 전새벽



엔비디아가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된 지금, 젠슨 황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읽었다. 그래픽 카드 제조사부터 AI의 대부가 되기까지, 그의 삶에는 어떤 특별한 면들이 있었을까. 깐부회동으로 인해 국내에서 한층 더 주목받기 시작한 이 작은 거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1. 미국으로 이주하다

젠슨은 1963년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가 태국의 정유회사에 취직하며 가족은 거처를 태국으로 옮겼다. 1960년대 후반 젠슨의 아버지는 맨해튼에 갔다가 미국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1973년 태국은 정치적 혼란을 겪는다. 거리에 탱크가 지나다녔다고 젠슨은 회고한다. 부모는 가족 이민 계획을 보류하고 두 형제만 먼저 미국으로 보낸다. 젠슨은 그렇게 켄터키주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젠슨은 3개 국에서 산 경험이 있었고 5개의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성적이 우수해 어떤 공과대학에든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오리건 주립대학을 택한다. 그리고 대학에 컴퓨터 공학 전공이 없었기 때문에 전기공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한다.


오리건 주립대학에서의 전기공학 전공 시절은 그에게 중요한 두 가지 자산을 남겼다. 하나는 회로 설계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나중에 GPU의 마스터가 되는데 큰 몫을 한다. 다른 하나는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전기공학과 학생 250명 중 3명 밖에 없는 여학생 중, 로리 밀스가 있었다. 젠슨은 공부를 도와주겠다는 명분으로 로리에게 접근하여 6개월간 보드 조립하는 실험을 함께 수행한다. 그 뒤에 데이트를 신청했고, 젠슨과 로리는 그 뒤로 한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2. 컴퓨터 그래픽의 미래를 보다

젠슨은 스무 살에 AMD에 취직했다. 그리고 회로 만드는 법을 기초부터 익혔다. 마이크로칩의 설계도를 종이에 그리면서 트랜지스터와 배선구조를 각각의 레이어로 세분화하는 일이었다. 종이에 그린 설계도는 제작부서로 넘겨져 셀로판지로 옮겨졌고, 이를 바탕으로 포토마스크가 제작되었다. 포토마스크는 최종적으로 반도체 제조시설로 보내졌다.


1985년 젠슨은 한 동료를 따라 LSI로직이라는 회사로 이직했다. LSI의 가장 까다로운 고객들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들이었다. 디자이너들은 더 빠른 칩을 원했고 그 욕심은 끝이 없었다.


LSI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젠슨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라는 고객사를 대응하게 됐다. 상대방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이었다. 크리스와 커티스는 젠슨에게 어려운 일을 계속 요구했는데, 젠슨이 이를 너무 잘 수행해내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세 사람의 팀워크는 결국 썬GX의 출시로 이어지게 된다. 썬GX가 성공하자 LSI는 젠슨을 시스템 온 칩(SoC)의 설계 플랫폼을 총괄 운영하게 했다.


이들 세 사람의 성공적인 협력은 1989년 '썬GX'의 출시로 이어졌다. 이 칩은 3D 그래픽 프로세서로 과학자, 애니메이터, 컴퓨터 지원설계(CAD) 모델러를 위한 워크스테이션에 탑재되었다. 이 칩은 공간상의 점들로 구성된 와이어 프레임, 스켈레톤을 입력 받아 한 픽셀씩 그려냈고, 블록 형태의 다면체로 구성된 회전 가능한 오브젝트를 만들어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썬GX의 그래픽 출력은 조악했지만, 당시에 눈을 가늘게 뜨고 CRT 모니터에서 16색 컬러의 화면을 보면, 컴퓨터 그래픽의 미래를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3. 엔비디아의 경영자가 되다

1992년, 크리스와 커티스는 자신들이 만든 신생 스타트업을 경영해줄 것을 젠슨에게 부탁한다. 젠슨은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스타트업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젠슨은 시장, 공급망, 경쟁사, 기술, 제품 적합성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새 회사가 하려던 것은 그래픽 가속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공룡의 와이어 프레임 스켈레톤을 그리는 데 사용되던 하드웨어를 활용해 3D 게임에서 조작 가능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실행하려면 저렿마고 효울적인 회로를 대량 생산해야 했고, 동시에 게임 프로그래머들이 하드웨어의 컴퓨팅 구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 위에 얇은 소프트웨어 층을 추가해야 했다.


오랜 논의 끝에 젠슨은 회사의 경영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해 회사 구조를 결정하기로 했다. 회사에 아직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담당 변호사는 서류에 그저 'NV'라는 말만 기재해두었다. 뉴 벤쳐라는 뜻이었다. 이는 흥미로운 우연이었다. 커티스와 크리스가 이미 자신들의 프로토타입 제품을 'NV1'이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경쟁자들이 질투(envy)하게 만들겠다는 야망을 담은 제품명이었다. 결국 그들은 라틴어 사전을 참고해 회사의 이름을 엔비디아로 결정하게 된다.


젠슨이 CEO, 커티스가 CTO, 크리스가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을 맡기로 한 엔비디아는 그렇게 출발했다. 젠슨은 1993년 2월에 서른 살이 되었고, 엔비디아의 법인 설립 증서는 약 6주 뒤인 4월에 발급되었다.



4. 제품을 내놓다

1994년 엔비디아는 서니베일의 한 쇼핑몰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NV1의 상용화를 위한 개발에 착수했다. 젠슨은 화이트보드에 마감기한을 적고 녹색, 빨강, 주황핵 보드 마커를 사용해 칩 아키텍처의 정밀한 다이어그림을 그렸다. 생산과 판매는 상업용 칩의 비지니스 모델을 따르기로 했다. 유럽의 반도체 공장에서 외주 생산을 하고, 미국의 다이아몬드 사가 유통을 하도록 외주한다는 전략이었다. 엔비디아가 담당하는 영역은 칩 설계와 품질관리였다.


엔비디아가 그래픽 가속기 출시에 열을 올리던 1990년대 중반, 게임 시장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이걸 요새 용어로는 프로덕트-마켓 핏(PMF)이라고 한다. 회사가 준비하는 제품과 시장이 얼마나 서로 결부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다행히 시장은 새로운 그래픽 가속기를 원하고 있었다.


1995년까지 3D 그래픽 시장은 젠슨이 가장 낙관적으로 예측했던 수준을 넘어서며 크게 성장했다. 이런 성장은 블록버스터 게임 덕분이었다. <미스트>는 1993년 9월 출시된 우아한 두뇌 퍼즐 게임으로, 신비로운 섬을 배경으로 했고, PC게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이 되었다. 불과 석 달 후에는 <둠>이 출시되었다. <둠>은 SF와 호러가 결합된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화성에서 악마들을 샷건으로 사냥했다. 두 게임은 비디오게임이 구현할 수 있는 양극단에 위치한 완전힌 상반된 개념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두 게임 모두 수백만 장이 팔렸고, 게이머들은 그래픽 가속기를 구입하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갔다.

- 본문 중에서


1995년 가을 엔비디아는 드디어 NV1을 시장에 내놓는다. 그해 연말까지 NV1 칩은 10만 개 이상이 팔렸고, 회사는 규모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엔비디아의 직원 수는 100명을 넘어섰다.



5. 위기를 맞이하다

1996년 1분기가 되자 엔비디아에는 위기가 찾아왔다. NV1의 성능이 기대보다 못하다는 게 드러난 것이었다. NV1은 깊이 버퍼가 없었고 클리핑 오류를 야기했으며 윈도우 운영체제와 연결이 끊어지곤 했다. NV1의 판매는 급격히 감소했고 결국 실패작이 되었다. 젠슨은 NV1을 가리켜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젠슨은 직원들을 소집해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회사 자금이 바닥나고 있으며 NV1의 아키텍처는 버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 스티븐 위트가 무려 3년을 취재하여 집대성한 엔비디아의 긴 여정 이야기,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위의 요약을 보고 흥미를 느낀 분이라면 일독을 강권한다. 집념으로 똘똘 뭉친 한 개인이 어떻게 작은 스타트업을 월드클래스로 성장시켜나가는지 보는 것도 재밌고, 무엇보다 그래픽 가속기를 만들던 회사가 어떻게 AI의 핵심 기술집단이 되었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다. 엔비디아가 멋지다는 수사에 그치지 않고, 머신러닝의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의 큰 강점이다.


읽으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엔비디아의 AI 산업 진출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젠슨 황은 대규모 연산 작업이 반드시 필요해질 것을 알고 오랜 시간을 준비해왔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는데, 대중은 물론 회사 내부에도 이를 반신반의하는 여론이 강할 정도였다고 한다. 엔비디아를 다루는 유튜브 영상과 글은 많지만, 어떻게 이 회사가 AI의 핵이 되었는지를 이토록 자세히 들려주는 자료는 없을 것이다.


스타트업 종사자, 기술 투자자, 경영학도를 포함한, 꿈과 성취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 모든 독자에게 즐거운 읽을 거리가 될 것이다.




젠슨 황은 신경망이 사회를 혁신할 것이며, 쿠다를 활용해 필수 하드웨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는 회사의 모든 것을 이 도박에 걸기로 했다. "그는 금요일 저녁에 이메일을 보내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딥러닝에 집중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래픽 회사가 아니다'라고 선언했어요." 엔비디아 개발자 프로그램 부사장 그렉 에스테스는 말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우리는 AI 회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그만큼 빨랐어요."

이 이메일을 보내기 몇 달 전, 젠슨은 쉰 살이 되었다. 머리가 점점 희끗희끗해지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소년 같은 열정으로 회사 곳곳을 활보하며, 종종 주니어 직원들을 붙잡고 그들이 진행하는 작업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회사가 커지자 그는 분기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열기 시작했다. 젠슨은 자료 없이 한 번에 두 시간 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발표 때마다 반복해서 강조하는 주제들이 있었다. 광속 일정 관리의 중요성과 동화 같은 제로-빌리언 달러 시장 개척, 무엇보다 점진적으로 스며드는 관려주의의 위험이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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