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피지컬 AI의 포텐셜과 한계

신간 <피지컬 AI 패권 전쟁> 소개

by 전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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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 로봇을 선보이고 테슬라가 휴머노이드를 선보였을 때까지만 해도, 로봇은 미래의 일일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LG전자가 빵 굽고 빨래 개는 홈로봇 'LG클로이드'를 선보였다. 그러자 로봇이 이제 오늘의 일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LG전자는 너무 친숙한 일상의 브랜드라서. 곧 베스트샵과 하이마트에서 홈로봇을 실제로 구매하러 다닐 날이 올 것 같아서.


피지컬 AI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챗GPT가 쏘아올린 AI 열풍이 이제 육체를 갖춘 로보트로 영역을 확장한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 사십 년 세상을 살았는데, 아직도 세상이 적응이 안된다.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한다.


그래서 이 책을 집었다. 피지컬 AI는 무엇이고 이를 둘러싼 각 국의 움직임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LG에서 AI최적화를 이끈 박종성이 지난달에 펴낸 따끈따끈한 신간, <피지컬 AI 패권 전쟁> 얘기다.



LG클로이드. 빨래 개는 용도로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귀여워서 갖고 싶다.



책은 세 장면을 상상해보자는 권유로 시작한다. 첫 번째 장면은 중국의 최첨단 전기차 공장. 유비테크가 만든 로봇이 차를 조립하다가,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스스로 배터리팩을 교체하고 온다. 두 번째 장면은 베이징의 복잡한 퇴근길 교차로. 보행자들과 자동차가 뒤섞인 혼돈의 도가니 사이로 하얀색 SUV가 운전자 없이 지나간다. 바이두의 완전 자율주행 택시, '아폴로 고'다. 세 번째 장면은 광활한 논 위. 윙-하는 소리와 함께 DJI의 드론들이 영양분이 부족한 부분만 정밀타격으로 농약을 살포한다.


위 3가지 장면은 SF 속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의 오늘날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싸게 많이 만드는 건 잘하지만 정교하게 만드는 건 한참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중국은 어떻게 하이테크 제조의 절대강자가 된 것일까. 우선 2017년으로 되돌아가보자.


2017년 5월, 중국 저장성의 우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바로 바둑 세계 1위 커제 9단과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대국을 앞두고 있던 것.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3판 다 알파고가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 커제는 알파고를 가리켜 '바둑의 신'이라고 말했다.


대국 결과와 별개로 정부의 대응도 화제가 됐다. 당초 대국을 생중계하겠다던 계획이 당일에 갑작스럽게 취소되고, 대중이 경기를 볼 방법이 없어진 것이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공산당 독재정권의 치졸한 꼼수'라고 지적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선은 중국에 대한 과소평가다. 박종성은 중국 정부가 대중에게는 정보를 차단하되, 정책 결정자들을 집요하게 닦달했음을 알린다. 그러면서 당과 정부, 산업계가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전력을 다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외부적인 체면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내부적으로는 AI 기술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한 위기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중국식 스푸트니크 모멘트의 핵심이었다.
- 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알파고가 아무 생각없는 중국 정부를 자극해서 AI 열풍이 시작된 걸까? 그건 아니다. 중국은 이미 2015년에 '중국제조 2025'라는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10대 핵심 육성 분야 중 하나로는 '자동화 기계 및 로봇'이 꼽혔다. 결과는 놀라웠다. 2024년 중국산 산업용 로봇의 시장 점유율은 52.3%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화낙이나 ABB 같은 외국 브랜드를 앞질렀다. 로봇 밀도(Robot Density)도 주목할만 했다. 노동자 1만 명 당 운영되는 산업용 로봇의 수를 말하는 이 수치는 2023년 기준 미국이 295대, 일본이 419대, 독일이 429대, 그리고 중국은 480대였다.


이렇게 로봇 기술에서 앞서가던 중국은 알파고 이후 로봇+AI로 패러다임을 확장했다. 2024년 3월 중국은 양회 정부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구신지능'이라는 말을 썼다. 피지컬 AI라는 말이었다.



00000000000000233743.jpg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인 양회. '구신지능'이란 말은 2024년 양회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회사들이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구신지능 전쟁을 벌이고 있을까? 앞서 이야기한 DJI 드론, 바이두의 자율주행, 유비테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기술들의 중심에 화웨이가 있다. 2022년 10월 미국이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화웨이는 자체 AI칩 어센드(Ascend)칩을 개발해냈다. 어센드 910B는 엔비디아 H20과 비교했을 때 일부 성능은 뒤쳐지지만 어떤 성능은 앞서기도 했다. 미국의 제재에 맞서 중국이 수정한 전략은 세계 최고의 A+ 기술을 좇는 대신 통제 가능한 B+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화웨이는 바로 그 B+ 생태계의 심장이었다.


기업을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도시를 보자. 먼저 베이징, 여기는 피지컬 AI의 두뇌다. 칭화대학교, 베이징대학교 같은 일류대학과 베이징인공지능연구원(BAAI) 같은 곳들이 밀집한 이곳은 '중국 AI 야망의 소스코드'를 만드는 곳이다. 그 다음은 상하이. 여기는 피지컬 AI의 몸체다. 19세기 말부터 중국 근대 공업의 발상지였던 이 곳은 오늘날까지 제조의 중심에 서 있다. 상하이 정부의 AI 생산계획은 구체적이다. 2027년까지 3천 개의 제조업체를 지능형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10개의 'AI+제조업' 시범 공장을 설립하며, 100개의 대표 스마트 제품을 출시하겠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선전이 있다. 이곳은 피지컬 AI의 신경망이다. 두뇌가 베이징에서 설계되고 몸체가 상하이에서 조립되는 동안, 몸을 구성하는 센서, 칩, 모터, 케이스 같은 핵심 부품들이 선전에서 만들어 진다. 하드웨어 분야의 실리콘 밸리라는 별명에 맞게, 선전은 세계 전자 산업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괄목할 만한 것은 각 지방정부의 정책이다. 선전을 예로 들면 AI산업 육성을 위해 100억 위안(원화 약 1.9조 원) 규모의 펀드를 운영한다. 그리고 컴퓨팅 파워 비용을 60%까지 보조해 준다.



2PIE5TMRAS42IEEMPOYAFKEBYE.jpg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도시 선전. 이곳에서는 하루 1500건의 창업이 이루어지고 50개의 특허가 출원된다고 한다.






<피지컬 AI 패권 전쟁>은 이렇게 중국의 기술 생태계를 초근접거리에서 생중계하는 매우 유용한 책이다. 읽고나면 피지컬 AI가 어디까지 왔는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고, 무엇보다 피지컬 AI로 중국이 달성하려고 하는 바를 새롭게 알 수 있게 된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며 어떤 취미를 가진 독자이냐에 상관 없이, 분명히 느껴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 전략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은 단순히 자국의 임금 상승이라는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비용 차익거래'라는 글로벌 게임의 규칙 자체를 '의도적으로 폐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평균 임금이 오르면 생산기지는 자연스럽게 베트남이나 멕시코 같은 다음 주자에게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산업이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고, 국가 보조금을 쏟아부어 기술적 대수술을 감행했다. 이제 국제 제조업 경쟁의 핵심 질문은 '어느 나라의 노동력이 더 저렴한가?'가 아니라, '어느 나라의 로봇이 더 효율적인가?'가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변화가 아닌, 지정학적 선전포고에 가깝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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