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랑켄슈타인(2025)> 리뷰
인류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질문들이 있다. 삶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 하는 질문들. 영국 작가 매리 셸리가 1818년 고작 스무 살의 나이로 발표한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질문들을 던지는 괴수(?) 이야기였다. 이야기도 매혹적이고 생각해 볼 거리도 많은 덕분인지, 이 작품은 그 뒤로 수백 번이나 리메이크 되어 왔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2025년에 이르러 이 질문들을 다시 꺼낸다. 무려 2시간 40분에 걸쳐서. 오래된 주제를 길게 얘기하는 것에 대한 변명일까. 영화는 엄청난 자본력으로 화려한 외피를 둘렀다. 미술도 음악도 굉장하다. 연기도 탁월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밌다.
아아 좋은 영화였다... 관람을 마치며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인생 최고의 영화로 이 작품을 꼽아야지... 하고. 호들갑을 더 떨기 전에 줄거리를 한 번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857년, 북극 탐험을 가던 호리존트호는 얼어붙은 바다에 갇혀 발이 묶였다. 선원들은 얼음을 깨부수며 상당 시간 그곳에 머무른다. 그러다 도움이 필요해보이는 남자를 발견해 배에 태운다. 이름을 물어보니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한다.
그 순간, 어디선가 덩치 큰 괴수가 나타나 선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괴수의 표효를 들어보니 괴수가 원하는 건 다름 아닌 프랑켄슈타이라는데.
선원들은 간신히 괴수를 얼음 바다에 빠뜨리는데 성공하고, 잠시 찾아온 평화를 이용해 프랑켄슈타인은 선장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의술을 익혔던 빅터는 어른이 되어 괴기한 과학자가 되었다. 괴기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의 연구가 시체들을 가져다 새 생명을 만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선 당연히 빅터를 비난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빅터를 찾아온다. 하를랜더라는 이름의 이 자본가는 빅터에게 무한한 연구비 지원을 약속하며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성공시켜보라고 한다. 일이란 역시 입금이 되어야 돌아가는 것. 빅터는 연구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마침내 그가 창조한 인간 형태의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1979년 과테말라에서 태어나 1990년대 후반부터 배우로 활동한 오스카 아이작이란 사람이 있다. 나는 그가 2025년 영화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을 연기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몸짓, 발성, 표정, 분장. 아이작의 모든 것이 관객을 빨아 들인다.
연기 못지 않게 훌륭한 점은 미술과 음악이다. 모든 캐릭터의 의상, 장소, 오브제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아름답게 버무려져 완벽한 동화를 창조해냈다. 거기에 감독이 좋아하는 그로테스크한 요소들까지 이질적이지 않게 어우러진다. 살점을 찢어내는 도륙 장면이 있는데도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음악은 알랙상드르 데스플라가 맡았으므로 말해 뭐하나 싶다. 1961년 파리 출생의 이 천재 음악가는 2003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음악을 맡은 이래 <색,계(2007)>,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Part. 1,2(2010, 2011)>, <제로 다크 서티(201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등 굵직한 작품들의 음악을 책임진 인물이다. 무거운 현악을 위주로 그려낸 <프랑켄슈타인>의 음악들은 작품이 황량함과 따듯함을 모두 그려낼 수 있게 최고로 기여한 요소임에 틀림 없다.
이제와서 말하건대, 나는 기예르모 델 토로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퍼시픽림(2013)>은 허무했고 <셰이프 오브 워터>는 뻔했으므로. 그러나 이제 <프랑켄슈타인>을 관람한 이상, 나는 죽을 때까지 그를 좋아할 것이다. 할 일도 많아졌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프랑켄슈타인>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프랑켄슈타인: 해부학 수업>도 봐야 하고 그의 2022년작 <피노키오>도 봐야하고 <기예르모 델토로의 호기심의 방>이라는 시리즈도 봐야 하고... 당분감 잠을 줄여서라도 그를 덕질해야 속이 시원하겠다. <프랑켄슈타인>이 남긴 감흥은 대략 그런 것이었다.
문학연구자들은 매리 셸리의 원작 소설이 1) 정신분석학 2) 페미니즘 3)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텍스트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존재론에 대한, 아주 끔찍하고 아름다운 장편 시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기예르모 델 토로 버전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중요한 작품일까? 나는 이것이 '존재론에 관한 엄청난 시청각적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마음을 안고 관람해보시기를 권한다.
원작이든 리메이크든, <프랑켄슈타인>의 특징은 서정성 위에 그로테스크가 입혀졌다는 것이다. 그 그로테스크는 의외로 따스함으로 연결되는 반전성을 가진 상징일 수도 있고,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장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편 매리 셸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고통이 아닌 기쁨으로 느껴지는 아이러니에 대해.
난 이미 런던에서 한참 먼 북쪽에 와 있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걷노라면 차가운 북풍이 내 뺨을 스치는데,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고 기쁨으로 충만해져. 누이는 이 기분을 이해할까?
P.S
작품 속에서 괴수는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이런 부탁을 하기도 한다. '나 같은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줘...' 물론 프랑켄슈타인은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만일 프랑켄슈타인에게 짝이 있었다면?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해 배우이자 감독인 매기 질렌할이 이야기를 하나 썼다. 괴수의 신부라는 의미에서 제목은 <Bride!>. 워너 브라더스가 붙어 대작 영화로 탄생한 이 작품은 이번주에 개봉한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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