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되는 불안, 바뀌지 않는 미래

영화 <부고니아>에 부쳐

by 전새벽
0.jpg


*영화의 주요 반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전 손택은 저서 <해석에 반하여>에서 말한다. “SF 영화의 주제는 과학이 아니다. SF 영화는 예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재난을 다룬다. (...) 그래서 SF 영화는 파괴의 미학에 초점이 있다. 혼란을 일으키고 아수라장을 만드는 데서 발견되는 독특한 아름다움. 좋은 SF 영화의 핵심은 이런 파괴의 이미지에 있다."


예시로 들기 적당한 작품은 단연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2025년작 <부고니아>다. 이 블랙코미디SF에는 과학이 없다. 오히려 그의 반대인 반지성이 있다. 적어도… 후반부까지는 그렇게 보인다. 테디라는 남자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들이 인간행세를 하며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명망 높은 CEO인 미셸을 납치한다. 그리고선 머리를 밀고, 지하실에 가두고, 자백을 강요하며 폭력을 일삼는다.


원작인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2003)>를 봤든 아니든 <부고니아>는 탁월한 서스펜스를 선보인다. 테디가 미친 사람이든 미셸이 거짓말을 하고 있든 끝내주는 결말이 있을 것 같아, 관객은 숨죽이고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롱샷과 클로즈업의 교차, 그리고 요란하고 불길한 현악이 관객을 끊임없이 유린한다. 어수룩해보이지만 알면 알수록 위험해보이는 남자 테디와 어느 순간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가스라이팅하는 미셸의 독특한 캐릭터성도 엄청난 즐길거리다.


대결 구도는 얼핏 단순해 보인다. 그 단순성을 위해 성별이 이용됐다. 납치범은 남성이고 잡혀온 사람은 여성이다. 얼핏 뻔한 가해/피해 구도로 시작했지만 불안은 전복된다. 미셸은 외계인이었고 테디의 저항은 실패했고 인류는 종말을 맞이했으니까.


결말까지 훑은 상태에서, 다시 대결 구도를 떠올려본다. 남성-여성이라는 영화 초기의 정보 외에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었었나? 그것은 다름 아닌 계급이다. 테디는 소시민 계급이고 미셸은 엘리트 계급이다. 그렇다면 <부고니아>는 거짓을 일삼는 엘리트 계급에 맞서는 소시민층의 눈물어린 투쟁/실패기인가?


그렇게만 봐도 영화는 충분히 재밌는데, 더 중요한 트위스트가 있다. 작중 테디의 행보를 잘 복기해보자. <부고니아>는 안드로메단 세력을 저지하려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테디가 원한 것은 안드로메단의 우주선에 탑승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부고니아>에서 테디의 꿈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엘리트가 되고 싶은 소시민의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결말은? 스스로 준비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테디는 목이 날아갔다. 함부로 계층 이동을 시도했다간 이렇게 된다는 서슬퍼런 경고인가.


수전 손택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공상과학 영화는 재앙을 다룬다. 그 재앙은 언젠가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위에 놓인 꽤 탄탄한 가설이다. <부고니아>의 뼈대를 이루었던 ‘단순한 도덕과 세계의 단결이란 희망어린 환상’은 무엇이었나? 적어도 진실을 깨달은 소수가 저항을 해줄 것이란 환상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소수의 바람은 종말을 막는 게 아니라, 종말의 순간에 VIP석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현대인의 실존을 둘러싼 ‘깊고 깊은’ 불안이 거기에서 포착된다. 엘리트는 세계종말을 주도하고, 소시민 계층의 아주 소수가 그것을 미리 깨닫되, 그들은 먼저 뛰어가 몇 개 남지 않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그리하여 우리 민간인들의 미래에는 구원도 환희도 없는 조용한 떼죽음만이 있을 것인데, 우주 빅뱅의 관점에서 그건 작은 티조차 나지 않는 하나의 작은 사건에 불과하고, 지구는 돌고, 태양은 여전히 불타고, 안드로메다인들의 마더십은 조용히 다음 행선지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영화 #부고니아 #리뷰

작가의 이전글존재론에 대한 엄청난 시청각적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