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전쟁의 시대에 필요한 것

영화 <미지와의 조우>를 기리며

by 전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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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1977년작 <미지와의 조우>는 어느날 외계생명체와 접촉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로이는 차를 몰고 가던 중 UFO와 만나게 되고 그 후 알 수 없는 강력한 욕망에 시달린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형상에 대한 집착이다. 로이는 산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이 매우 중대한 무엇인가임을 직감하고 기행을 일삼는다.

같은 시기, 어린 소년 배리의 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강력한 섬광과 함께 집에 들이닥친 UFO로 인해 배리는 실종되고 만다. 엄마인 질리언은 그때부터 넋이 나간채 아들과 UFO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질리언 역시 산 이미지에 집착하며 로이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

한편 정부와 연구시설은 UFO가 세계 곳곳에 남긴 흔적들을 찾아나 메시지를 해독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메시지가 미국의 어느 지방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곳은 다름아닌 서북부의 도시 와이오밍. 로이와 질리언 그리고 정부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와이오밍으로 모이기 시작하는데…


스토리는 단순한 편이다. 요약하면 ‘외계 존재와의 두렵고 신비로운 교류 경험’이다. 물론 ‘외계인=침략군’이라는 기존의 보편적인 도식을 뒤집었다는데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있다. 그러나 스토리의 독창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게 만들 정도로 이 영화는 만듦새에서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먼저 음악은 존 윌리엄스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나홀로 집에>, <죠스>, <슈퍼맨> 시리즈 등의 음악을 책임진 영화 음악계의 거장이다. 윌리엄스가 깔아둔 배경음악은 <미지와의 조우>가 갖는 강력한 두려움, 호기심, 신비로움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대화시킨다.

특수효과의 경우 더글라스 트럼불이 소매를 걷어부쳤다. 이력서를 열어보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블레이드 러너(1982)> 등 강력한 키워드를 가진 그는 모션 컨트롤을 개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기술 덕분에 미니어처 사이즈의 우주선들이 거대한 크기로 스크린에 표현될 수 있었다.

편집은 마이클 칸의 공로로 돌아간다. <쉰들러 리스트(1993)> 등 명작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이 거장은 <미지와의 조우>의 후반부에서 인간과 외계존재가 흡사 음악회를 여는 것 같은 엄청난 시퀀스를 완성해냈다.


<미지와의 조우>는 AFI 선정 100대 영감을 주는 영화 58위, BBC 선정 100대 미국 영화 75위에 이름을 올렸고 미 국립영화등기부에서 영구히 보존하는 작품이 됐다. 스필버그의 탁월한 감각에 음악, 특수효과, 편집의 3 요소가 마법을 부린 덕분일 것이다. 한편 뒤늦게 이 작품을 관람한 내게는 한 가지 요소가 더 눈에 띄었는데, 바로 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산업/정치적 바탕이다. 1970년대 중후반에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같은 시기 한국의 산업/정치적 상황을 떠올려보면 헐리우드의 역사가 부럽기만 하다. 2천만 달러라는 당시의 제작비는 지금 물가로 치면 1억불을 웃돌고도 남을텐데. 이만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작품이 개봉하고, 결론적으로 제작비의 15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는 영화 지평이 그야말로 내게는 미지와의 조우였달까.


끝으로 영화에 담긴 철학에 대해 얘기한다. <미지와의 조우>가 서사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외계인=침략군’이라는 기존의 SF 도식을 완전히 전복시켰다는데 있다. 미지의 문명끼리 충분히 서로를 궁금해하고, 알아가고, 화합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태도가 이 영화의 근간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칼 세이건, 테드 창 같은 인물들이 품었던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초등학교를 폭격하고도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인물들이 만든 지금의 미친 전쟁 시대에 필요한 것 아닐런지.


#영화 #미지와의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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