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함을 잊지 마라

다큐 <꿈의 구장 고시엔> 리뷰

by 전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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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KBO의 막이 올랐습니다. 가을까지 144회 대회. 긴 여정을 출발하는 선수들과 팬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뜨거운데요. 저 역시 경기 챙겨보고 관련 기사를 읽느라 바쁜 요즘입니다.

그런데 팬들에게는 늘 변치 않는 고민이 하나 있죠? 바로 경기가 없는 월요일 저녁에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분들께 권하고 싶은 90분짜리 다큐 한 편을 가지고 왔습니다.


일본의 젊은 야구 선수들이 선사하는 희망찬 청춘 다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웰메이드 작품, 꿈을 향한 힘찬 응원가 <꿈의 구장 고시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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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스포 없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시도군으로 나누는 행정구역의 개념, 일본에서는 도도부현이라고 부릅니다. 도쿄도가 있고 홋카이도가 있고 오사카부가 있고 가나가와현이 있는 식이죠. 그리고 총 47개의 도도부현이 매년 딱 한 팀만을 가르는 야구 진검승부를 펼칩니다. 바로 제전국야구선수권대회인데요. 먼저 지역예선을 치러 도도부현 우승을 뽑고, 47개의팀이 모여 토너먼트 형식으로 우승팀을 가립니다. 바로 효고현에 위치한 꿈의 구장 고시엔에서 말입니다.


한편 고시엔 구장에서 무려 8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에 오늘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바로 요코하마 하야토 고등학교 야구부의 선수들인데요. 여름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간, 선수들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으로 꽉 차 있습니다.


바쁜 것은 선수들만이 아닙니다. 감독인 미즈타니 데쓰야는 벌써 30년째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고교 선수들에게 야구 기술과 승리를 향한 집념,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까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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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투지와 끈기로 똘똘 뭉친 우승후보팀이지만, 사실 하야토 선수들에게는 문제가 많습니다. 주장은 슬럼프에 빠졌고 또 엔트리에 들길 간절히 원하는 한 3학년 학생은 체중이 자꾸 미달나서 걱정이죠. 연습경기마다 잔실수는 반복되고 감독의 쓴소리는 자꾸만 늘어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다가옵니다. 바로 6월말, 전국대회 예선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인데요. 엄숙한 분위기에 모인 선수들을 앉혀두고 미즈타니 감독은 명단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바로 내일, 요코하마현 대회를 떠날 엔트리 명단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야토에는 190명에 달하는 야구부원이 있지만 이 엔트리에 뽑히는 것은 고작 20명에 불과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3때까지 야구에 인생을 바친 젊은 선수들의 운명이 바로 지금 이 명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선발된 20명은 원정을 출발해 총 6번의 경기를 치를 겁니다. 그리고 6번 모두 이기면 그때 본선에 참가하기 위해 고시엔으로 떠나게 돼죠.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토너먼트라는 것입니다. 즉, 한 번만 패배해도 시즌 종료. 고3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고교야구 마지막 시즌을 코앞에 두고, 모두는 초긴장 상태로 명단 호명에 귀를 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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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스포 없음)


전국대회에 도전하는 고교생들의 이야기, 라는 설정에 작품의 분위기를 곧바로 예상하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꿈의 구장 고시엔> 예상한 그대로 흘러가는 다큐입니다. 도전과 함성, 좌절과 눈물,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청춘의 희망가... 그런데 좋았습니다. 전부 예상한 것이었는데도 정말 뜨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만큼 영화는 고시엔을 둘러싼 열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일본산 야구만화를 보신 분은 아마 '갑자원'이란 단어를 기억하실 겁니다. 바로 고시엔의 한자를 우리나라 말로 읽은 것인데요. 저도 어렸을 때 야구만화를 읽으며 갑자원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웬걸, 다큐로 보니 갑자원의 실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뜨겁고, 훨씬 진지하고, 훨씬 눈물나는 그런 것이군요.


소재의 특성만 잘 살린 게 아닙니다. <꿈의 구장 고시엔>은 상당히 영리한 방식으로 관객을 만족시켜줍니다. 먼저 고시엔이 어떤 의미인가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야구장 너머 일본 사회 곳곳의 풍경을 빠르게 스케치하며 고시엔을 둘러싼 전국적인 열기를 보여줍니다. 그 다음은 성장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먼저 미즈타니 감독의 고집을 보여주고, 야구 감독을 넘어 한 개인으로서 그의 삶과 가족을 보여주고, 그리고 엔딩 시퀀스에서 달라진 그의 태도를 인터뷰하며 90분이란 짧은 러닝타임안에 성장스토리를 잘 녹여냈죠. 그러니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강추, 주제가 무엇이든 잘 만든 다큐 좋아하시는 분들께도 강추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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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절제미에 있습니다. 워낙 낭만과 투지가 휘몰아치는 장르이다보니 작품이 감정과잉을 의식적으로 누른 티가 나는데요. 고작 두 계절에 걸친 하야토 3학년 선수들의 이야기가 너무 신파로 흐르지 않게, 감독은 편집과 서사 전환을 통해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마 연출자인 에마 야마자키 감독이 일본과 미국사회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라 가능한 절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오래된 고교야구부의 전통에 대해 굳이 터치하는 것도 감독의 특징인 것 같고요.


마치며


오늘 소개한 다큐의 주인공 미즈타니는 좋은 지도자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면들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성적도 우수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고 무엇보다 선수들과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가 선수들에게 전하는 말을 들으며 저는 몇 번 울컥했습니다. 그중 하나만 소개하면 이것이겠군요.

"이 분함을 잊지 마라."

미즈타니표 야구 교육의 정말 그의 말대로 야구를 통한 인생교육이라면, 비록 패배했을지언정 그의 팀은 정말 인생교육 제대로 한 것은 맞겠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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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미즈타니 감독도 매력 있지만, 저는 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는 고교 다큐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다음주 월요일, 야구 경기가 없는 그날이 또 돌아오면 그때 보시라고 작품의 제목을 적어두고 갑니다. 바로 티빙과 왓챠에서 보실 수 있는 85분짜리 웰메이드 다큐멘터리, 거제여상 학생들이 졸업전 댄스 스포츠에 도전하는 귀염뽀짝 청춘 드라마 <땐뽀걸즈>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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