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_세븐레이크
다음날 일어나니 오전 10시였다. 개운하게 푹 잤다. 산장 아주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아침을 준비했다. 갑자기 산장 아주머니가 물을 어디서 갖고 왔냐고 물어본다. 호수에서 갖고 왔다고 하니, 당장 버리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사용하시는 끓인 물을 주었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도 호수 물을 정수해서 쓰셨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어제저녁은 호수 물로 쌀 씻고 요리를 했다. 어쩐지 속이 이상하며, 음식이 비렸다. 더불어 아주머니께서 캠핑 버너 말고, 부엌의 식기구를 사용하게 해 주셨다. 덕분에 아침 요리는 아주머니의 '10분만 더 끊여라', '뚜껑 덮어라'라는 간섭 아닌 코치로 훌륭하게 성공했다. 아침을 먹고 산장을 나왔다. 아주머니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아주머니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셔서 사진 은 못 찍었다. 침대 이불 위에 감사의 답례로 처음에 말하셨던 방 값을 고이 올려놓고 왔다.
다시 한번, 세븐 레이크의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오늘은 화창한 날씨의 세븐 레이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졌다. 구름은 맑은데, 먹구름이 살짝 보이는 것이 영 불안했다. 점점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다시 정상에 도착해서, 파노라마로 세븐 레이크를 담았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경치와 내가 머릿속으로 기대한 경치는 많이 달랐다. 사진을 찍고 1분 정도가 지나니, 빗물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했다. 다행히 내려갈수록 비가 그치며 바람이 약해져서, 하산에는 큰 문제없이 안전하게 등산을 마칠 수 있었다.
세븐 레이크를 떠나서, 소피아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문득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무엇을 봐도 '우와' '대박' 하던 감탄사가 어느 순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줄어든 감탄사 대신 비교를 시작했다. 이곳은 이곳과 비슷하고, 여기는 거기보다 별로라고 생각하며 저울질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는 순간부터 사진 속에서 보던 이미지를 기억하고 그 뷰를 확인하러 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에 맞춰서 보려고 했다.
트레킹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무스타파 가족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 준비해온 음식들을 같이 나눠 먹었다.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함께 만들었다. 텐트에서 추워 떨고 있을 때, 나타난 천사. 산장 아주머니의 배려로 산장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산장 아주머니와 같이 요리했던 추억들도 만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던 화창한 세븐 레이크의 뷰를 보지 못하자(결과), 무엇인가가 많이 아쉬웠다.
여행을 다니면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결과보다는 그 순간과 과정을 즐기며 살려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결과에 기분이 좌우되는 사고 습관은 남아있었다. 비수기에 와서 성수기에 볼 수 있는 화창한 날씨의 세븐 레이크를 기대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자 아이러니다. 날씨가 좋든 안 좋든 자연은 있는 그대로 봐야 했다.
화창한 날씨의 세븐 레이크든 비가 오는 날씨의 세븐 레이크든, 세븐 레이크라는 자연은 그대로 거기 있었다. 지금 내 눈 앞에 백두산의 천지 같은 호수 7개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 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했다. 1박 2일간의 세븐 레이크 캠핑은 내 머릿속에 있던 화창한 뷰보다 더 값진 에피소드들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여행이 끝나고 사회로 돌아가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행은 어떤 뷰(결과)를 보는 것보다 어떠한 에피소드나 경험을 했냐는 것이 더 값지다. 그 경험과 에피소드가 훗날 나를 미소 짓게 할 추억이 되므로. 그 사실을 소피아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