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_루마니아
부체지산에서의 밤은 너무너무 추웠다. 마음은 정말 편했지만, 두 다리는 웅크리고 잤다. 어서 빨리 해가 뜨기를 바라며, 2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길 오전 7시 30분쯤, 드디어 해가 뜨며 햇살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러, 텐트 밖으로 나갔다. 부체지 산에서 보는 일출을 보고 한 가지 깨달았다. 일출은 지상도 아닌, 바다도 아닌, 구름 위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하얀 구름 층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햇빛은 또 하나의 신기한 자연경관이었다.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정말 경이로웠다. 아침부터 눈이 호강을 했다. 때마침 밖으로 나오신 산장 아저씨와 조우를 했다. 나의 살아있음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많이 추울 테니 산장 안으로 들어와서 몸 녹이는 것을 권했다. 아저씨가 주신 차 한잔으로 몸 내부를 데우며, 마저 보던 일출을 감상했다.
다시 텐트로 돌아와 아침을 준비했다. 산에서 요리하는 순간은 매우 행복하다. 캠핑 버너에서 나오는 불로 발을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텐트 안에서 요리를 하면, 텐트 내부도 열기로 인해, 금방 따뜻해진다. 해도 뜨고 바람도 잠잠해서, 아침은 야외 테라스에서 먹었다. 산장 아저씨와 작별인사 후,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루트는 처음 올라왔던 부스테니가 아닌, 시나이아 방향으로 내려갔다. 길이 완전히 달랐기에,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부스테니에서 올라오는 길은 산속을 걷는 하이킹이다. 반면에 시나이아로 내려가는 길은 어느 정도 산을 내려오면,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평원이 많았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차를 갖고 와서, 이곳에서 피크닉을 즐겼다. 점심시간에 다다랐을 때, 피크닉을 즐기는 어르신들에게 빌붙기 신공과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피크닉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빵과 치즈 및 불가리아 위스키를 얻어먹었다. 할머니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루마니아에서 하이킹할 때는 물이 아닌 위스키를 마시면서 하이킹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주시는 위스키를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좋은 추억을 기억하고 싶어, 다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나중에 늙었을 때 그 생각과 마음들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사진 속에 그대로 드러난, 루마니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웃는 얼굴은 진짜였다.
부체지산에서 시나이아 마을로 안전하게 하산 후, 바로 부스테니 마을로 향했다. 부스테니 마을에 도착하니, 시간은 저녁 시간대였다. 짐을 맡겨 놓은 리디아 아줌마를 찾아갔다. 그날 바로 수체아바라는 새로운 도시로 넘어갈지, 부스테니 마을에서 하루를 더 머물지 고민하고 있었다. 시나이아로 내려오는 하산 코스가 상당히 길어 피곤했기에, 부스테니 마을에 머무는 것으로 마음의 무게는 이미 기울였다. 부스테니 마을도 역시,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처럼 산으로 가는 거점도시로서, 대부분의 숙소가 호텔이었다. 부스테니 마을에 머물기로 한 이상, 숙소는 야외취침이었다. 때마침 리디아 아줌마 내 가게 뒤편에 공터가 있어서, 그곳에서 텐트를 칠 수 있는지 양해를 구했다.
내가 인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루마니아 사람들의 인성이 착한 것일까. 결론은 인복도 있었고, 루마니아 사람들의 인성도 훌륭했다. 리디아 아줌마는 민박을 운영하고 계셨다. 밖에서 자면 추우니, 화장실 딸린 3인실 방을 내주셨다. 동시에 루마니아의 전통음식인 사르말레를 저녁으로 제공해 주셨다. 루마니아의 따뜻한 저녁 한 끼를 선물 받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정이었다. 리디아 아줌마의 딸이 그 당시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딸이 나와 비슷한 동갑내기였는데, 나를 보니 딸 생각이 나서 마음이 동하셨다고 했다. 오랜만에 타국에서 느껴보는 엄마의 정이었다. 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 나도 무엇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배낭 밖에 없고, 한국에서 가지고 온 기념품도 없었다.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행을 다니면 찍었던 사진과 춤추는 동영상이었다. 다행히도 리디아 아줌마와 남편 분께서는 여행 사진과 영상을 재미있게 보시며, 흡족해하셨다. 리디아 아줌마 덕분에 이 날의 피로를 완전히 풀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리디아 아줌마가 준비해주신, 루마니아식 아침으로 배를 채웠다.
루마니아에서 오랜만에 엄마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집필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주며, SNS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