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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win Mar 26. 2019

#30 사람 냄새나던 97시간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기

러시아

 

 러시아 여행 중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이었다. 나의 노선은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이동하는 87시간의 4박 5일 기차 여정이었다. 하지만 출발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어서, 바로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기차는 없었다. 그리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야간열차를 타고 10시간을 이동하여,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나는 모든 기차표를 러시아 역에 가서, 직접 구매했다. 러시아 철도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원하는 시간대와 기차 가격을 알아보았다. 그 내용을 종이에 러시아어로 그대로 적어가서 매표소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원하는 시간표가 있으면 바로 구매했지만, 매진이 되면 상황이 난처해진다. 직원은 영어가 안 되었고, 나는 러시아어가 안 되어서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러시아 대학생들이 나타나서, 상황을 해결해주었다. 언어를 못해도, 어떻게든 여행은 할 수 있다.

러시아어를 직접 적어가서, 러시아 표를 구매했다.

 참고로 모든 기차역에서 모든 구간의 노선의 기차표를 살 수 있다. 즉,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그라드 역뿐만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노선을 살 수 있다. 나는 출발하는 역에서만 출발하는 기차표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많은 고생을 했다. 더불어 시베리아 횡단 열차표를 구입할 때는 시차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열차시간표는 모스크바 기준으로 발행된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면적을 자랑하는 나라로서, 도시 간에 시차가 존재한다. 모스크바와 이르쿠츠크는 5시간 정도 시차 차이가 난다. 즉, 모스크바발 이르쿠츠크행 기차표에 이르쿠츠크에 14시 도착으로 표시되어 있으면,  실제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 현지 시간은 21시다. 이 점을 꼭 기억해서, 여행 일정을 세워야 한다. 

4일 간 생활했던 좌석. 누워서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기에 최상의 좌석이다.

 플랫폼에 들어가니, 내가 4박 5일의 여정을 보내게 될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기차에 들어갈 때, 승무원에게 표 검사를 받고 들어간다. 여권으로 본인 확인을 하니, 표와 여권을 모두 소지해야 한다. 기차표에 자기 칸과 자리 번호가 다 표기되어 있다. 내 번호를 찾으며, 내 좌석을 찾아갔다. 나의 좌석은 당연히 제일 싼 6인실 플라츠 카르타이다. 표 구입 시, 좌석을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복도 쪽의 맨 아래칸을 선택했다. 이 자리가 좋을 것 같았고, 혼자 열차를 탄다면 실제로도 매우 좋다. 윗 칸은 하루 종일 누워있을 것이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다. 물론 아래칸을 쓰더라도, 윗 칸의 사람하고 식사할 때 자리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창 밖으로 펼쳐지는 러시아의 풍경도 볼 수 있으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불편함이 없어서 좋다. 쉽게 이 층 침대를 생각하면 된다. 


 승무원이 가져다준, 의자 및 침대 시트를 받아서 자리를 준비한다. 여유롭게 태블릿에 담아 간 영화 2편 정도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베트남 기차 여행을 통해서, 기차에서 할 것을 준비해 가지 않으면 장시간의 기차여행은 한가로움과 잉여의 끝임을 알았다. 그래서 4일간 볼 영화들을 많이 준비했다. 4일간 식량의 대부분은 한국 컵라면 5개로 준비했다. 처음에 너무 많이 구매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컵라면 5개는 신의 한 수였다. 열차가 중간중간 정하는 역에서 러시아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기에, 많은 식량을 구매하지 않았다. 러시아 열차에서 제공하는 뜨거운 물로 라면을 해결하고, 첫날은 오래간만에 푹 쉬었다. 


 외국인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낭만이다. 4일 동안 시베리아의 밤낮없이 바뀌는 풍경과 그 풍경을 보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게 열차는 낭만보다는 교통수단이자 삶의 일부에 더 가깝다. 한국사람들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듯이, 이들에게는 좀 더 장거리의 교통수단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장거리의 열차를 어떻게 매번 타는지, 이들도 기차에서 낭만을 찾는지 궁금해졌다. 이들이 기차에서 낭만을 찾는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4일간 기차를 타보니, 3가지의 낭만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 번째 낭만, 음식. 식도랑 여행

 내 좌석 옆 칸에는 4명의 러시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을 통해 내가 발견한 첫 번째 낭만은 바로 음식이다. 여행 중에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다니는 식도락 여행을, 누군가는 최고로 친다. 음식은 집에서 먹는 것보다는, 야외에 나가서 피크닉에서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음식은 혼자 먹는 것보다는, 누군가 같이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서로 초면이지만, 자신이 준비해온 음식을 같이 나눠 먹으면서 러시아 사람들은 친해져 갔다. 기차에서 먹는 음식은 매우 맛있어 보였고, 실제로 그들은 정말 맛있게 보였다. 

옆 자리에 위치한 러시아 분들. 노트북을 들고 있는 분이 아르젬 아저씨다.

 사람과 친해지고 싶으면 먼저 다가가 베풀면 된다. 옆 좌석에 계시던 아저씨가 나에게 계속 'Film' 'Film'을 물어봤다. 그래서 나의 노트북을 빌려드리고, 그 안에 있는 영화를 보여드렸다. 아저씨의 이름은 아르젬이었다. 아르젬 아저씨는 영화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시간이 흘러, 열차는 어느 도시의 역에 도착했다. 아르젬 아저씨가 나에게 오더니, 'Drink' 'Drink'를 말하신다. 눈치껏 이 단어의 의미는 술을 먹을 수 있냐는 질문이므로, 손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하며 함박미소를 보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한국 청년은 감히 어떻게 어른이 제안하는 술을 절대 거부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낭만, 보드카

 그리하여 열차 칸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러시아에서 먹는 첫 번째 보드카였다. 원래 열차 내부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다. 열차를 탈 때, 짐 검사를 하는데 술을 못 싣고 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열차가 출발하고 큰 도시의 역에 정차할 때, 역에 거주하는 상인들에게 술을 사 온다. 물론 술을 들고 올 때도 승무원에게 걸리면 안 되므로, 검은 봉지에 숨겨서 들어온다. 나는 그렇게 귀한 술을 먹고 있는 것이다. 안주는 아르젬 아저씨가 술과 함께 사 온 닭다리였다. 1인 1 닭다리를 먹었는데, 얼마 만에 먹는 닭다리인지 정말 맛있었다. 나와 아르젬 아저씨를 포함한 3명은 보드카를 30분 내로 사이좋게 나눠 먹고, 나는 기절했다. 참 신기했던 것은 분위기였다. 서로 대화가 안 통해서 어색할 것 같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 만국 공통어인 바디 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했다. 손뿐만이 아닌, 팔다리를 다 사용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서로 정확한 의미 전달은 안 되었지만, 바디 랭귀지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바디 랭귀지는 원 샷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내가 찾은 두 번째 낭만은 바로 보드카다.

아르젬 아저씨와 함께, 우 보드카 좌 닭다리를 들고 있는 나

 보드카를 다 마시고, 바로 옆 자리인 내 자리로 돌아와서 숙면을 취했다. 이때 해가 쨍쨍하게 뜨고 있는 대낮이었다. 일어나 보니 밤이었다. 오랜만에 해를 보고 자서, 달을 보며 기상을 했다. 오래간만에 먹은 술은 해장을 요구했다. 모스크바에서 구매한 한국 컵라면이 머리를 스쳤다. 아르젬 아저씨에게 한국의 해장용 라면을 소개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들리는 것은 아르젬 아저씨의 코골이 소리였다. 아저씨도 아주 깊은 숙면을 취하고 계셨다. 뜨거울 물을 컵라면에 부어, 컵라면 한 그릇을 먹었다. 배에서 풀리는 술기운에 몸은 안식을 찾아갔다. 낮에 하루 종일 잤는데도, 배가 차니 또 잠이 몰려왔다. 


 열차에서 3일째가 되니, 이제 슬슬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승무원 분께서 카트를 끌면서 맛있는 걸로 유혹하지만,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카드놀이하면서 활기차게 시간을 보냈다. 아르젬 아저씨께는 전 날 보드카에 대한 보답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여드렸다. 아저씨는 엄지 척과 함께, 또 다른 영화를 요구하셨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남자는 똑같다.

술자리에 초대받은 이무르와 함께, 이번에는 꼬냑을 마신다

 열차에서 4일째가 되는 날, 아르젬 아저씨의 소개로 새로운 친구 이무르를 만났다. 이무르는 프랑스인으로서, 러시아어와 중국어 그리고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엘리트였다. 아르젬 아저씨께서 다시 한번 술을 사러, 정차한 역에 나갔다가 이무르를 만났다. 러시아어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무르를 보자마자, 우리 술자리로 데리고 오셨다. 이무르는 낯선 러시아인의 초대를 흔쾌히 받아들일 줄 아는 오픈 마인드의 여행자였다. 이무르를 통해서,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술자리를 가졌다. 이번 술은 코냑이었다. 아저씨와 이무르가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면, 이무르와 내가 영어로 대화를 했다. 대화가 통하니, 대화를 안주 삼아 천천히 술을 마셨다.


이무르와 함께 한국 컵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있다.

술을 먹고 자리로 돌아오니, 술기운에 슬슬 눈이 풀렸다. 이때가 오후 4시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깊은 잠을 잤다. 저녁에 일어나서 이무르에게 가니 역시 뻗어있었다. 조금 뒤 일어난 이무르와 함께 내가 준비한 컵라면으로 함께 해장을 했다. 한국의 컵라면에 대한 이무르의 반응은 엄지 척이었다. 아르젬 아저씨는 슬슬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계셨다. 함께 해장하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컵라면을 전해드렸다. 라면을 드시고, 미소 지을 아저씨의 얼굴이 생각난다.


새벽에 열차에서 내리시는 아르젬 아저씨와 일행을 배웅하며

 새벽이 되어서, 아르젬 아저씨 일행은 열차에서 내렸다. 나는 일어나서, 아르젬 아저씨 일행을 배웅하며, 떠나가는 뒷모습까지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음식과 술을 건네주는 러시아 사람들의 정. 언어는 안 통하지만 내가 열차에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고 챙겨주던 러시아 사람들. 그들의 정을 사람 냄새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람냄새를 물씬 풍기던 아르젬 아저씨와 일행들,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았다. 너무 감사했기에.

 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낭만을 꿈꾸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머릿속의 낭만과는 다르다. 하루만 지나면 쓰레기통은 쓰레기로 넘쳐흐른다. 냄새에 민감하면, 러시아 사람들 특유의 암내와 사람들의 발 냄새로 진동하는 열차 안은 힘들 것이다. 잠자리에 민감하면, 좌석을 이어 붙여 만든 열차 침대는 힘들 것이다. 기차여행은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기차여행을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힘든 현실에 양념이 되어, 힘든 현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켜 준다. 열차에 들어왔을 때 나던 러시아 특유의 암내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발 냄새를, 그 냄새를 잊어버릴 만큼 사람 냄새를 물씬 풍겨주신 아르젬 아저씨. 아저씨들 덕분에 열차에서 사람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열차에서 발견한 마지막 낭만, 사람 냄새다.


 나중에 다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저 없이 예스를 외칠 것이다.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약간의 흔들림, 그 흔들림 속에서 열차가 달리는 소리를 들으며 취하는 숙면, 러시아 사람들의 보드카, 역에서 파는 도시락과 닭다리. 그 무엇보다 사람 냄새나던 모스크바발 이르쿠츠크행 열차. 훗날 또다시 오른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아르젬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기를 기대하며,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해 준 아르젬 아저씨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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