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_뭄바이
인도 제1의 경제도시 뭄바이로 왔다. 나는 도시 간 이동을 할 때, 버스 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은 또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하지만 인도의 야간 버스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버스에 있는 내내 외부로부터, 먼지를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야간 시트의 먼지를 한 번 털면, 버섯 모양의 먼지구름이 올라온다. 먼지 속의 야간 버스를 타고, 뭄바이에 도착했다. 뭄바이에 있는 최고급 호텔 타지마할 호텔 주변으로, 여행자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근처 저렴한 호스텔에 숙소를 잡고, 뭄바이를 둘러보러 나왔다.
처음으로 간 곳은 게이트 오브 인디아로서, ‘인도의 문’이라고 불리는 관광 명소다. 인도의 기념물은 70년간 인도를 통치한 대영제국을 빼고 논할 수 없다.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인도는, 1911년 영국의 왕 조지 5세와 메리 여왕의 인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인도의 문을 세웠다. 인도의 문에서 그들을 환영하는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아이러니하게 인도의 문은 인도인들에게 통쾌의 역사도 가지고 있다. 영국이 인도의 식민지를 끝내고 철수할 때, 마지막으로 인도의 문 밑을 지나갔다. 영국은 인도의 문에서 환영을 받으며 들어왔지만, 그 문을 닫고 나갔다. 인도의 문은 대영제국 식민통치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기념물이다.
인도의 문 옆에는 타지마할 호텔이 있다. 인도 자본가인 잠세트지 나 세르완 지 타타가 지은 호텔로서, 1903년에 완공되었다. 타지마할 호텔을 지은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타타가 식민시절 당시 최고의 호텔인 아폴로 호텔에 방문을 했다. 하지만 그가 인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폴로 호텔에서 거절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 제일의 호텔을 짓기로 결심했다. 자비로 최고의 자재를 사들여 타지마할 호텔을 건축하였고, 여러 번의 공사를 거쳐 현재의 타지마할 호텔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뭄바이 최고의 호텔이 되어 인도를 방문하는 세계의 정치가 및 유명인사들이 이 호텔에서 머물고 간다. 타지마할 호텔에 들어가, 로비와 내부를 둘러보았다. 깔끔한 시설과 고급스러운 외풍은 감탄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 비투숙객도 사용할 수 있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화장실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타지마할 호텔을 나와서, 뭄바이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인도 경제 제1의 도시답게 한쪽 거리에는 상점들이 진열되어 있고, 릭샤들의 상태도 깔끔했다. 릭샤는 인도의 교통수단으로, 한국의 택시와 비슷하다. 또한, 영국의 식민지였던 뭄바이에는 유럽풍의 건물들도 많이 남아있었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유럽풍의 건물들과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높은 빌딩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뭄바이에 세련된 도시 이미지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뭄바이는 다른 얼굴도 가진 도시로서, 다른 곳에는 200개가 넘는 슬럼가들이 존재했다.
뭄바이의 대표적인 슬럼가가 위치한, 마하 락시 미역(Mahalaxmi railway)으로 향했다. 뭄바이의 두 얼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마하 락시미다. 마하 락시미에서 ‘도비 가트’를 볼 수 있다. ‘도비 가트’는 빨래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도비왈라’들이 빨래를 하는 장소이다. ‘도비왈라’는 인도에서 빨래하는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로, 대를 이어 빨래를 전수한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라는 계급체계가 존재했었던 나라였다. 현재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도비왈라’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다. 아직도 카스트 제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인도에서, 신체 분비물이 접촉하는 것을 싫어하는 인도인들 사이에서, 도비의 계급은 최하위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을 '장인'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노동과정을 숭고히 하며 기록하고 배우려고 한다. 어떤 가이드 책에는 한 사람의 노동을 관광하러 가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말 자체가 '그들이 도비라서, 그들의 계급이 최하위라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든다. 한 분야에서 장인이 된 사람과 도비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도비들은 빨래터의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인도 사회에서 그들을 볼 때는 도비지만, 관광객들이 그들을 볼 때는 하나의 노동 집단일 뿐이다. 관광객은 그들의 신분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의 문화에 없는 것을 보러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는 시설은 낙후되었지만, 그들이 보여준 호의는 밝았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사진기로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면 환하게 웃던 그들. 그들을 빈민으로 규정한 것이 인도 사회의 남아있는 의식인지 돈의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도 남들과 똑같이 산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낮 외국인이었기에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외국인이기에 그들이 신기해서 먼저 다가온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조건 없는 호의였다. 어떤 도시를 방문해도 빈부의 격차는 존재한다. 그 격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며, 그 모습을 카메라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도시는 뭄바이였다. 나에게 뭄바이는 두 얼굴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