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_바라나시
인도 첫 여행지는 바라나시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이 있는 곳이며, 맛있는 라씨가 있던 도시였다. 새벽에 도착한 바라나시 버스 정류장은 노숙을 하기에는 노숙 문화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새벽 버스를 기다리는 현지인들이 대부분 노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를 찌르는 냄새와 쓰레기 더미들로 인해, 호스텔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바라나시의 올드 시티인 고돌리아로 향했다. 릭샤를 타고 이동했다. 옆에 있던 서양 친구 2명과 같이 타서, 인당 요금을 줄였다. 가끔 목적지가 같으면, 근처에 있는 여행자와 함께 이동하면서 인당 지불할 요금을 줄일 수 있다. 릭샤는 인도의 교통수단으로, 한국의 택시와 비슷하다.
갠지스 강에는 새벽부터 목욕을 하기 위해, 주민들이 강가에 나와 있었다. 인도 갠지스 강에서 보는 일출은 신비했다. 많은 이들이 보트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갠지스 강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갠지스 강이 있는 다샤스와메드 가트 주변에 있는 호스텔에 체크인했다. 가트는 인도 말로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라는 뜻이지만, 한국말로 마을로 이해해도 무난하다. 짐만 내려놓고 가트를 구경하러 나왔다. 바라나시의 색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바라나시를 돌아다녔다.
다샤스와메드 가트에는 유명한 3곳의 라씨 집이 있다. 도착한 첫날, 3 곳 모두를 한 번씩 다 가봤다. 바라나시에 머무는 3일 동안, 개인적으로 제일 맛있었던 라씨집에만 계속 방문했다. 바라나시에서는 인도 전통음악을 배우거나 팔찌 만들기 등을 하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간다. 바라나시는 무엇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닌, 정말 쉬러 오는 상념의 도시다. 도시의 느낌이 휴양과는 살짝 다르다. 인도 바라나시를 같이 여행 한 진호 형이 음악을 배운다기에, 나도 따라갔다. 음악에 소질이 없는 나는 옆에서 구경만 했다. ‘디가 디가 하면서 젬베를 치는데, 한 번 정도는 경험상 배우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았다.
진호형이 음악을 배우는 동안, 나는 여행 다니면서 입던 옷들을 버리고 인도에서 새 옷을 사기로 결정했다. 다샤스와메드 가트에서 나와, 상가와 재래시장이 몰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인도의 옷답게 화려한 색채가 들어간 옷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초록색의 항아리 바지 하나를 샀다. 진호 형과 조우해서, 릭샤를 타고 돌아왔다. 진호 형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릭샤가 하두 '빵빵'거려서 1분에 얼마나 빵빵 거리는지 세어보니 28번이라고 했다. 인도도 만만치 않아서, 나도 ‘빵빵’ 거리는 숫자를 세어보았는데, 포기했다.
저녁이 되어 다샤스와메드 가트로 돌아오니, 많은 인파들이 중앙에 몰려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바로 갠지스강에서 열리는 ‘아르띠 푸자’ 종교의식 때문이었다.‘아르띠 푸자’는 매일 밤 갠지스 강 가트에서 7명의 브라만이 강가의 여신에게 바치는 힌두교 제사 의식이다. 바라나시에 머물면서, 2번의 아르띠 푸자를 관람했다. 종교의식이라서 그런지, 신성했고 황홀했다. 7명의 브라만은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성직자 계급답게,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나온다.
다음 날, 바라나시의 다샤스와메드 가트를 따라 쭉 걸어갔다. 그러면 화장터에 도착하게 된다.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강의 신성한 물에 뿌려지면, 윤회가 끊어진다고 믿는다. 전국의 모든 인도인들이 갠지스강에 와서 화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화장터 주변을 걷다 보면, 화장터로 옮겨지는 시체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갠지스 강으로 가는 시체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행복했을지 슬펐을지 고난했을지, 왜 그들은 윤회를 끊으려고 하는 걸까?
문득, 현재 내 삶은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자연스레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로 생각이 이어진다. 끝내,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첫날, 바라나시의 색을 담으러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바라나시는 다양한 색감으로 칠해진 도시였다. 그 다양한 색감은, 바라나시로 화장하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다양한 색감의 양 끝에는, 삶과 죽음의 색이 있었다. 바라나시에 오면 화장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바라나시가 휴양이 아닌, 상념의 도시라는 의미를 안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