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위안

by 파르헤시아

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막하기만 하다. 오로지 땅이라도 파서 들어가고 싶은 비통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한 순간이라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마저 없어진다. 그나마 내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고, 또 글자를 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절망한 마음을 스스로 위안하는 심정으로 한 권의 책을 손에 들고 읽는다. 그러다보면 잠시 뒤엔 마음이 조금 안정된다. 만약 내가 비록 오색(五色)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할지라도 책을 앞에 두고 마치 깜깜한 밤처럼 여기는 까막눈이었다면, 장차 어떻게 마음을 쓰게 되었을는지.


-이덕무(李德懋, 1741~1793, '耳目口心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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