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 아끼는 사람, 보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이 있다. 중국 동진(東晉)의 고개지(顧愷之)의 그림을 부엌에 걸거나, 왕애(王涯)의 그림을 벽에다 꾸미는 것은 오직 소장한 것일 뿐, 단지 소장한 것만으로는 능히 그 그림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설령 본다 해도 어린애가 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림을 보며 입을 벌리고 흐뭇해 하지만, 붉고 푸른 색깔 외에 다른 것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능히 그 그림을 아끼고 사랑할 수가 없다. 설령 사랑하고 아낀다 해도 오직 붓과 종이의 색깔만 가지고 취하는 사람, 또는 그림의 형상과 구도만 가지고 구하는 사람은 능히 그 그림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마음으로 그림을 만난다. 그런 까닭에 그림을 감상하는 진정한 즐거움은, 소장하거나 바라보거나 아끼는 세 부류의 껍데기에 있지 않다. 오직 알아봄에 있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참다운 것이 보이게 되면 이를 마땅히 간직하게 된다. 이것은 그저 모으고 쌓아두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유한준(兪漢雋, 1732∼1811), 「석농화원(石農畵苑) 발문(跋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