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중대부로 이사(夷射)라는 자가 있었다. 어느 날 왕이 베푼 연회에 참석하였다가 술에 만취했다. 술을 깨려고 잠시 연회장을 나와 복도(회랑) 입구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때 한 문지기가 이사에게 다가왔다. 문지기는 대뜸 이사에게 간청하였다. “중대부님, 술을 조금만 나눠 주시겠습니까? 연회에서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좋습니다. " 이사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문지기였다. 형벌로 한 쪽 다리를 잃고 문지기가 된 자였다. 이사는 문지기에게 버럭 화를 내며 나무랐다. “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 버릇없이 함부로 말을 거느냐? 죄를 지어 벌을 받은 주제에 감히 윗사람에게 술을 달라고 구걸까지 하다니... 썩 꺼지거라!”
이사의 불호령에 문지기는 황급히 이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사가 그 자리를 떠나자, 문지기는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복도에 물을 뿌렸다. 그 모양새가 흡사 오줌을 싼 것과 비슷했다. 이튿날 아침, 왕이 복도를 지나다가 물 흔적을 보게 되었다. 왕이 회랑(복도)의 출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를 불러 물었다. “누가 감히 왕의 회랑에 소변을 보았는가?” 문지기는 대답했다. “누가 소변을 보았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어젯밤에 중대부 이사님께서 술에 취하셔서 이 자리에서 계셨습니다.” 분노한 왕은 이사에게 죄를 물어 처형하였다. 한비자의 내저설 편에 나오는 사실(史實)이다.
한비자의 일화는,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는 행위 또한 남을 해치는 거짓말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 방법은 진술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그릇되게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술에서 거짓말을 가려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만 진술의 일관성, 사실의 비교 검증, 그리고 진술하는 말 뒤에 숨겨진 동기, 특히 '고의성'의 존재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거짓말의 유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는 있다.
학술적으로 '거짓말'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의도적으로 꾸며낸 거짓을 말하는 행위(lies by commission), 그리고 비록 꾸민 거짓은 아닐지라도, 관련 정보나 중요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빼놓고 말하는 행위(lies by omission)를 전형적인 '거짓말'로 규정한다. 그런데 한비자의 사례는, 진실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짓말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조작 행위와 함께 중요한 사실이 누락된 진실을 말함으로써 표적으로 삼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했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의 실체는 문지기의 의도와, 그가 남몰래 저지른 행위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명백한 사실을 말했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문지기가 스스로 전모를 밝히지 않는 한, 눈에 보이는 사실과 진술하는 명백한 사실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진술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의적 판단과 해석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에 있다.
“분명히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는데 거짓인 경우가 있다.진실만을 얘기해 사람을 속이는 일은 가능하며 흔하다. 특히 정치인들이 이 방법을 자주 쓴다.”(Rogers, Zeckhauser, Gino, Norton, & Schweitzer, 2016).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의 심리학자인 토드 로저스(Todd Rogers)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 대학원 모리스 슈와이처(Maurice E. Schweitzer)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2016년 12월 미국 심리학회지(APA)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진실을 진술하는 이러한 유형의 거짓말을 제3의 거짓말로 규정하고, 이를 ‘폴터링에 의한 거짓말(lies by paltering)'이라고 명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폴터링(Paltering)은, 그릇된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는 적극적인 형태의 기만이다. 폴터링을 하는 사람은, 진술을 듣는 상대가 자의적인 해석을 하도록 부추김으로써 갈등을 조장한다. 즉 자신은 진실을 말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반면에 표적이 오해 혹은 오도의 소지가 있는 진실 말하기에 초점을 맞추는 독특한 형태의 기만이다. 폴터링이 해당 사안과 상관없는 다른 내용의 진실을 말함으로써 본질적인 진실을 감추고, 진술을 듣는 사람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게 유도함으로써 오해의 소지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한비자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폴터링(paltering)의 사전적 뜻은 ‘어름어름 넘기다', '얼버무리다', '말끝을 흐리다’이다. 우리 말로는 '호도'(糊塗)다. 호도(糊塗)는 물체 위에 풀을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을 덮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덧칠을 함으로써 진짜 모습을 가리는 거짓 행위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용례와 달리 주로 '어리석음' 또는 '멍청함'을 뜻한다고 한다. ‘총명(聰明) 함’의 반대말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흐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폴터링'(paltering), ‘호도'(糊塗)’, '그릇되게 이끈다'라는 뜻의 ‘오도'(誤導)’는 그 맥락이 같다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짓'을 '행위'(行爲)'라고 말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행위'란, '분명한 목적이나 동기를 가지고 생각과 선택, 결심을 거쳐 의식적으로 행하는 인간의 의지적인 언행'을 뜻한다. 따라서 '의지를 가지고 행한다'라는 점에서 행위는 동기와 과정과 결과를 무론하고 윤리적인 판단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인간의 행위는 윤리적·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마땅히 옳고 그름과 선악의 판단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거짓말에 관한 칸트의 도덕법칙을 설명하면서, '허위가 아닌 진실의 진술'과 '거짓말'의 명확한 구분은 도덕법칙의 위배 유무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 칸트의 주장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거짓이 아닌 사실을 말해서 상대방이 오도할 수 있게 한다면, 비록 그 결과가 거짓일지라도 칸트의 도덕법칙에 위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말로 이해하자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남을 속일 수 있으며, 특히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도덕이나 양심에 대한 자기 정당화 혹은 자기 합리화가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논리적 설명이다. 다만 샌델은, 이렇듯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오도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기만의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실을 말함으로써 그릇되게 이끄는 거짓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은, 무조건적으로 엄격한 도덕법칙에 그 잣대를 두기보다는, 동기와 목적이 자신의 이익을 충족하기 위한 이기심에 있는가의 여부, 또는 그로 인해 드러난 결과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로저스의 연구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여러 거짓말의 방식 중에서 ‘폴터링(paltering)’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진으로 이루어진 참가자의 50% 이상이 과거 협상의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폴터링'을 실제로 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신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실을 말함으로써 거짓말임이 바로 드러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재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뒤늦게 상대로부터 자신이 호도 혹은 오도당했음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폴터링과 거짓말을 구분하지 않았다. 거짓말과 똑같이 취급하여 폴터링한 사람을 가혹하게 평가했으며, 협상 상대로 다시는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폴터링은 주체가 되는 사람에게 비록 도덕적 윤리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가능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할지는 몰라도, 기존의 거짓말들과 똑같이, 개인의 인격은 물론 인간관계에 심각한 훼손과 갈등을 야기하고 폐해를 남긴다.
"속이고 싶으나 속이기가 어려운 사람은 반드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것(欺有欲人 욕구 혹은 욕망)를 이용해서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쓰기 마련이다. 속임을 당할 만한 일로 속임을 당하는 것은 대인(大人)으로서도 면할 수 없는 일이라 어찌 족히 누(累)가 되겠는가마는, 만일 속임을 당해서는 아니 될 일로 속임을 당하면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최한기 人政, 測人門)"
예컨대 유능한 사기꾼들은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고도 감쪽같이 사람을 속인다. 이들의 성공과 실패의 관건은, 목표로 하는 상대가 제풀에 속아 넘어가는가에 달려 있다. 그 목적은 속임의 행위를 통해 부당한 이익 혹은 상대의 돈을 편취하는 데에 있다. 소매치기도 마찬가지다. 숙련된 소매치기들은 표적 대상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한눈을 팔게 하여 방심하도록 만든다. 그 목적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주머니 속 돈을 훔치기 위해서다. 기술적으로 속이는 행위라는 점에서 마술사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마술사가 소매치기나 사기꾼과 다른 점은 그 동기와 목적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 자세에 따라 어이없이 속임을 당하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해야만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이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여러 이유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속이려는 상대의 속 마음 즉 의도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쉽게 속임의 표적이 된다. 사람의 속마음은 알려고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 또는 '백 번 보는 것이 한번 체험하는 것보다 못하다'라는 옛말이 있다. 치밀하게 계획된 거짓말은, 관련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검증하지 않은 한, 진실의 여부는커녕 사실의 여부조차 전혀 가늠할 수 없다. 하물며 본질과 상관없이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의해서 제풀에 속아넘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총명'의 반대에 해당하는 의미의 '멍청함' 즉 '호도(糊塗)'라 하겠다.
폴터링의 사례는, 약간의 관심만 기울여도 비단 정치인들, 기업 경영자들, 그리고 이들의 마름으로 기생하는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일부의 선택된 진실만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여 윤리·도덕적으로 떳떳하다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폴터링이 거짓말과 같다고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나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나는 폴터링이든 거짓말이든 간에 '세 가지 유형의 거짓말'에서 결코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단지 개인적 이득 때문에 남을 속이는 거짓 언행에 집착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헛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애써 노력할 뿐이다. 여하튼 상업적,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익 또는 개인적 이익이 된다면, 너도 나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폴터링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최근의 언론 매체들과 유튜브 또는 종편의 정치 자영업자들,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의 폴터링 행위는 후안무치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가관이다.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두뇌는 실제로 부정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짓말에 대해서 "기분이 좋지 않다"라는 부정적인 감각을 느끼도록 반응한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거짓말이 반복되면, 이러한 감각을 잃을 수 있다. 심지어 앞으로 더 큰 거짓말을 하도록 장려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하게 시작했을지라도, 뚜렷한 동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지속적으로 부정직한 행위에 개입하면 할수록 더 큰 부정직한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Garrett, Lazzaro, Ariely, & Sharot, 2016).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영국 런던 대학 (UCL Experimental Psychology)의 심리학자인 탈리 샬롯(Tali Sharot)은 "사소한 부정직한 행위가 더 중대한 사안으로 확대되는 '미끄러운 경사면(fallacy of slippery slope)'에 빠지게 된다(2016)."라고 비유하였다. 미끄러운 경사면은 논리 오류의 일종으로, '미끄럼틀을 한번 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없이 끝까지 미끄러져 내려간다.'라는 뜻이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 또는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라는 우리 네 옛 속담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폴터링의 위험성은, 첫째, 문제가 되는 사안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대중과 여론을 조종하고, 둘째, 의도적으로 대중들의 자의적 해석을 오도하여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불순한 의도에 있다. 이는 명백하게 도덕법칙에 위배되는 비윤리적인 행위에 해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해서 문제적 사안의 본질이 되는 진실의 정확한 실체를 은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왜곡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언론과 사회적 책임이 있는 지식인들의 폴터링은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아주 불순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비록 진술에서 거짓말을 가려내기가 아주 어렵다 할지라도, 폴터링의 특성상 폴터링을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적어도 폴터링 또는 호도(糊塗), 혹은 오도(誤導)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쉬운 예로, 비록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할지라도 듣거나 보는 이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애매모호한 언행,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자칫 곡해할 수 있는 언행, 일부의 사실만을 들어 전체를 판단하거나 지나친 일반화로 치우친 언행, 문제 사안의 본질보다는 도덕 혹은 인정에 호소하거나 허수아비를 때리는 식의 논점을 회피하는 물타기 언행, 말끝 흐리기, 의사표현이 불분명한 언행 등이 그렇다.
조금이라도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다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폴터링이 흔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뢰란, '예측 불가능한 타인의 미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또는 최소한 악의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여담으로, 평소 가깝다고 여기고 신뢰하던 사람이 시간이 흐를수록 말이 짧아지고, 의도치 않게 그에게서 폴터링과 비슷한 언행을 자주 발견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더욱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기대가 사람에 대한 희망이기에 더욱 그렇다.
역으로, 진실 혹은 사실을 말하지만 거짓말과 다를바 없는 폴터링 행위가 사회와 개인에게 끼치는 해악을 인식할 수 있다면, 자신의 언어습관 또한 마땅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만일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릇된 습성에 그대로 젖어 있다면,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 조차도 모를 수도 있다. 정작 부끄러워 해야만 할 것은 그릇됨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고,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만 할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옛글에 이르기를, “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無恥之恥 무치지치) 네 글자는 종신토록 외워서 반성할 만한 글이다. '부끄러움을 쓰는 바가 없다.'(無所用恥 무소용치) 네 글자를 읽노라니 사람으로 하여금 등에 식은 땀이 흐르게 한다. 그 병의 뿌리는 바로 ‘스스로 속임(自欺)’이다."(맹자, 진심상)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기만 행위는 비단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삶에서도 일상적으로 흔히 접한다. 예를 들면, 전자기술의 발달로 이미지 특히 인물사진은, 굳이 어려운 포토샾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스마트폰 어플 필터의 간단한 터치만으로도 평범한 얼굴이 연예인 못지않은 아주 아름답고 세련되고 화사하고 멋진 얼굴로 대변신한다. 기만의 차원에서 책과 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문학 예술 작품을 제외하고 인문학 관련 글이나 언론 기사와 같은 비문학 글 중에서 가장 나쁜 글은, 제시하는 주제와 뜻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글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동일한 텍스트를 두고 읽는 사람들 마다 제각각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글, 즉 의도적으로 글의 내용과 주제의 해석을 전적으로 독자의 추측과 판단에 내맡기는 글이 가장 나쁜 글이다. 이른바 독자를 기만하는 글이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든 사회적 대인관계에서든, 대화나 토론 등 일반적인 의사소통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거짓말인 폴터링은 모호하거나 애매한 가운데서 큰 효력을 가진다.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실보다는 자신의 감정이나 추측을 기반으로 하여 일방적으로 상대의 언어를 해석하고 이해할 때,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폴터링은 훌륭한 기만의 도구가 된다. 일상의 삶에서 기만의 고의성 여부에 상관없이 믿은 사람만 바보되는 일은 흔한 일이다.
폴터링의 기만 행위를 분별하는 일은 그 모호함의 특징때문에 의외로 쉽지만, 인간적인 신뢰가 결부되어 있을 경우에는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언어로써 뜻을 정확하게 주고 받는 것은 모든 의사소통의 기본이다. 일방적인 추측이나 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서, 서로간의 의사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이해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정확한 사실과 적확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현상을 관찰· 분석함으로써 옳고 그름과 진위를 바르게 분별·판단· 평가·해석하는 일련의 이성적 사고 과정을 '비판적 사고'라고 말한다. 따라서 일상의 대인관계에서 본의 아니게 타인으로부터 폴터링 당함으로써 스스로 실망스럽고도 수치스러운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비판적인 사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청나라의 서화가 정섭(鄭燮 1693~1766)은 이런 말을 남겼다. "총명하기가 어렵지만 멍청하기도 어렵다(聰明難 糊塗難). 그러나 총명함을 거쳐서 멍청하게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由聰明轉入糊塗更難)." (2018.12.22 쓰고 23일 정리, 2020.4.25 다시 가다듬고 고쳐쓰다)
#폴터링 #사실을말하는거짓말
※오늘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글을 찾아 다시 읽어보니, 뒤죽박죽 쓰레기 잡글이 따로 없다. 내친 김에 마음을 다잡아, 맥락을 흐트리지 않는 선에서 다시 가다듬고 고쳐썼다. 글을 정연하게 쓰는 것도, 바르게 고치는 것 또한 아둔하고 게으른 내게는 여전히 어렵다.(20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