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종교와 양심

by 파르헤시아

비판을 초월하기 때문에 종교이기도 하지만, 해하려는 신성불가침은 없다. 비판받아야 한다. 이젠 인간은 무반성 신뢰만이 신앙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어떤 종교경전도 그는 비판 없이 읽으려 하지는 않는다. 반성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계시, 환상을 본 사람도 영구적으로 자아의식을 초월해 버린 일은 없다. "나를 본 자가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하는 사람은 분명한 자아의식을 가진 사람이지 결코 탈혼상태(脫魂狀態)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교회는 사람의 양심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절대권을 대표하느니만큼 도리어 끊임없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교회를 비판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일반적인 데서부터 만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현 단계의 필요에서 부터이다. 자각증상은 고사하고 보는 남의 눈에 병색이 뵈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사(私事)가 아니다. 믿는 자의 취미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종교는 믿는 자만의 종교가 아니다. 시대 전체, 사회 전체의 종교이다. 종교로써 구원 얻는 것은 신자가 아니요 그 전체요, 종교로써 망하는 것도 교회가 아니요, 그 전체다. 그런데 도리어 교회가 툭하면 사회에 대해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종교가 있다면 기독교다. 즉 국민의 양심 위에 결정적인 권위를 가지는 진리의 체계가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인생관이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그 기독교가 내붙이는 교리와 실지가 다르고, 겉으로 뵈는 것과 속이 같지 않은 듯하고, 살았나 죽었나 의심이 나게 하니 묻지 않을 수 없다.


-함석헌('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상계 1956.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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