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천하에 흥하여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고, 망해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도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다. 어느 나라 국민이 의(義)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며, 그와는 반대로 백성이 여러 패로 갈라져 한 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 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외국에는 아첨하고 제 동포와는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다. 이제 왜의 세력이 전국에 충만하여 궐내에까지 침입하여서 대신(大臣)도 적의 마음대로 내고 들이게 되었으니 우리나라가 제 2의 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고에 망하지 아니한 나라가 없고, 천하에 죽지 아니한 사람이 있던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일건사가 남아있을 뿐이다." 선생은 비감한 낯으로 나를 보시며 이 말씀을 하셨다. 나는 비분을 못 이겨 울었다. -김구('백범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