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에서 회복한 사람들이나 가족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 있다: "나를(가족을) 낫게 해 준 신께 감사한다" 또는 "나에게 다시 살 기회를 준 신께 참으로 감사한다"라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말을 하는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이러한 신이해는 개인의 감사 행위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왜곡된 신이해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전지전능한 신,' '치유의 신'에 대한 이해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사람들은, 병이 나은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신이 치유하고 기회를 주고, 병에 걸려 결국 죽은 사람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신이 낫게 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신이 그렇게 만든 '당연한 것'이라는 종교적 폭력으로 기능한다. 그런 이들에게 결국 '신을 믿는다'는 것은 '교환경제(economy of exchange)의 신'을 믿는다는 의미로 왜곡된다. 즉 소위 '주고 받기(give & take)'라는 계산된 교환경제 행위가 '종교'의 의미를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자면, 내가 열심을 다해 교회에 충성하고, 헌금하고, 기도하면 그 정성을 보아서, 신은 내게 축복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병을 낫게 해 준다는 전통적인 신이해이다. 이러한 초월적인 '전지전능한 신' 이해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 신을 죽였다"라는 선언을 시작으로 해서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신 죽음의 신학'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도전을 받는다. -강남순(신학자, '전지전능한 신(神),' 그런 신은 없다'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