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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허튼소리

너에게 묻는다

by 파르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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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속담에 '늑대는 양이 느끼는 공포나 고통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언어, 즉 말과 글을 포함하여 여러 수단으로 표현된 모든 문학예술 작품(Text)은, 그것이 나오게 된 배경, 상황, 정서 등의 전후 사정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를 '맥락'(Context)이라고 한다.


클래식 음악이나 명화를 감상할 때 그냥 나 홀로 무턱대고 감상하는 것보다는, 전문 큐레이터나 해설자가 전해주는 작품 배경과 작가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을 때, 감상의 질과 공감의 깊이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는 맥락(Context)의 이해 때문이다. 텍스트는 눈에 보이는 것이고, 맥락은 텍스트의 보이지 않는 이면이다. 즉 맥락(Context)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에, 알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 않으면 결코 알 수가 없는 영역이다.


이렇듯 표현된 것의 맥락을 사전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비로소 어떤 텍스트에서 자신이 느끼는 공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맥락을 도외시한 채 텍스트만으로 느끼는 모든 감정은 허울만 좋은 껍데기 감정 즉 허영의 감정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군맹무상(群盲撫象), 즉 시각장애자들이 코끼리를 만지고서 제각각 자기 느낌으로만 코끼리를 이해하고 또 논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여담이다. 한때 최승호 시인의 시(詩)가, 수능 시험문제로 출제된 적이 있었다. 시인은 자신의 시에 관한 수능 문제를 직접 풀었지만, 답을 도무지 맞힐 수가 없었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사례로,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있다. 널리 애용되는 이 시는 유명한 만큼 자칫하면 꿈보다 해몽이 더 좋거나, 혹은 군맹무상의 감상으로 빠질 수 있는 좋은 예다.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반드시 실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송(宋) 나라 여이간(呂夷簡)의 말이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도 짐승 같은 마음을 가진 자도 있다" 이 말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권호문 선생의 통찰이다.


처음의 속담으로 다시 돌아가서, 늑대의 실체를 안다면, 양을 일상의 먹잇감으로 애용하는 '늑대가 양의 공포나 고통을 이해하고, 심지어 연민까지 느낀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라 하겠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라는 혹자의 말은 사람의 도리에 맞는 마땅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소리, 늑대소리... 온갖 정신없는 소리들이 난무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실체를 종잡을 수 없는 '탈진실의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20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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