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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Sep 14. 2020

글쓰는 사람의 임무

언어를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쓰는 것은 의미의 분열에 대항하는 방법이자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격려하고 우리에게 희망과 전망을 불어넣는 대화를 독려하는 방법이다. 모든 것을 그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하려고 애쓴 일이다. ...글 쓰는 사람의 임무는 남이 뚫어둔 창을 그냥 내다보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밖으로 나가는 것, 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 혹은 아예 집을 헐어서 속에 든 무언가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모두 어딘가에 갇혀서 우리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무언가를 눈에 보이게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뉴스 저널리즘은 어제 세상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집중합니다. 그 일의 바탕에 어떤 세력이 있는가, 그 시점의 기존 구조로부터 이득을 얻는 숨은 수혜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경찰이 흑인 남성을 총으로 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건의 육하원칙 외에 더 알아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런 사건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 또는, 그런 사건이 장기적으로 공동체와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는, 경찰의 통상적인 정당화 논리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역사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라도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사실을 자신이 기존에 알던 사실에 어떻게 통합시키는가 하는 패턴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실을 선택하고, 오독하고, 왜곡하고, 배제하고, 윤색하고, 이쪽에는 연민을 보이지만 저쪽에는 보이지 않고, 이 메아리를 기억하지만 저 선례는 잊어버리는지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알면, 현재 너머를 볼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미래도 내다볼 수 있고, 모든 것은 변하는 데다가 가장 극적인 변화는 종종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김명남 역, 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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