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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May 29. 2021

가짜 뉴스 구별하기

요즘 언론이 미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린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의한 '딥 페이크'(deep fake) 기술이 워낙 정교하기 때문에 이미지나 사진, 음성 등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편집한 영상들이 가짜 뉴스의 사실적 근거와 증거로 사용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심지어 사실 이미지의 특정 부분만을 특별히 부각하고 전혀 다른 맥락의 다른 이미지와 대비시켜 마치 허수아비를 때리듯 사실을 왜곡·조작하기도 하고, 국내외의 자료를 가리지 않고 전문적인 통계를 상습적으로 조작하여 왜곡 해석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외국 유명 언론의 기사 또는 외국 학자의 책이나 인터뷰에서 특정 문장이나 단어를 의도적으로 오역함으로써, 관련 사실의 진위를 왜곡· 조작하기도 한다.

'가짜 뉴스'는 그 양상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그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가짜 뉴스는 일베와 같은 소시오패스 성향의 반사회· 반윤리 커뮤니티를 필두로 친일 성향의 변종 극우 커뮤니티, 인터넷 언론, 돈벌이 목적의 정치 유튜브 등, 현실 기득권 세력에 기생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의 SNS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정치적인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작성된 추측, 왜곡, 조작된 허위 사실들을 공중파 방송 및 주요 언론에서 조차 베껴쓰기, 받아쓰기 등으로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거기에 공영방송과 "기더기" 언론에 기생하는 다양한 전문가의 평론을 덧붙여 가짜 뉴스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바 "기더기" 언론들은 아예 대놓고 가짜 뉴스를 남발한다. 이들이 애용하는 가짜 뉴스의 정보출처는 주로 국민의암 정치인들과 현 정부의 국가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친일매국세력, 그리고 정치적으로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SNS, 소시오패스 및 사이코패스 성향 일색의 일베와 같은 반사회적 커뮤니티다. 이들은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가짜 뉴스를 서로 돌려가며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비슷한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고 반복해서 순환시킨다. 


이를테면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일베' 나 '정치모리배', '폴리페서' 등이 거론한 것을 유력 정치인이 동조하고 거기에 의미 부여하여 확대 해석하고, 확대 해석된 그것을 언론과 기득권에 기생하며 '현실의 정치권력을 추종하는 교수나 학자'(폴리페서)들이 전문가의 소견을 덧붙이며 적극 동조하고, 또 그것을 "기더기" 언론이 그대로 따옴표로 받아쓰기하고, 뉴스 형식의 소설로 재구성하여 마치 기정사실인 양 논란거리로 공론화시킨다. 아울러 공론화된 그것을 수익형 유튜브와 SNS에서 사람들의 애국심이나 정의감, 또는 도덕성과 감정을 건드리는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붙여서 재탕삼탕 하는 가짜 뉴스 소비의 수익형 구조가 형성된다. 


그렇게 확대 재생산된 허위사실 또는 가짜 뉴스는, 분별의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마치 진실인 양 굳게 믿으며 너도나도 도덕심과 정의감에 불타올라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허위 사실이 진실로 탈바꿈하여 마치 거미줄 펼치듯이 유포 확산되는 형식이다. 심지어 한국 언론의 가짜 뉴스를 일본의 주류 언론들이 정치 이슈화하여 대서특필하고, 이것을 다시 인용하여 한국의 "기더기" 언론들과 국민의암 정치인들이 가짜 뉴스의 사실적 근거로 삼는 황당한 매국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굳이 가짜 뉴스의 정의를 나름 내리자면 가짜 뉴스란,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언론보도의 형식을 취해 유포되는 거짓 또는 허위 정보’를 말한다. 혹자는 실제 소비자에 의해 보편적으로 그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상품에 대해 사실 체험의 기사형식으로 제작된 광고까지 가짜 뉴스의 범주에 포함하기도 한다. 물론 거짓 또는 조작 및 허위정보는 비단 뉴스에만 국한되지 않고, 상업적인 목적과 사회적 명성에 이익이 된다면 다양한 사회적 권위를 등에 업고, 정치· 사회· 문화· 역사· 과학· 심리학· 철학· 인문· 종교· 언론· 예능· 오락· 취미· 광고 등 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짜 뉴스의 해악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인 까닭은, 기성 언론들이 언론의 권위를 등에 업고 가짜 뉴스를 남발함으로써, 사실의 진위를 파악할 여력이 없는 상당수의 일반 대중들의 판단과 선택에 혼란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론의 권위를 무턱대고 신뢰하기 때문에 언론이 보도하는 가짜 뉴스를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가짜 뉴스의 해악은 비단 정치 사회 문화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성의 "기더기" 언론이 앞장서서 다양한 분야의 가짜 뉴스를 상업적으로 정치적으로 적극 이용하여 잘못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정치 사회적으로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 및 사회적 혐오와 차별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권 침해는 물론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까지 발생시키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정치의 차원에서 언론발 가짜 뉴스는 정보의 생산 공급 주체와 정보의 객체 사이에 일종의 힘겨루기식 권력게임의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기더기" 언론은 그야말로 적폐 기득 권력의 시녀로서 민주사회의 발전과 혁신을 방해하는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회 현실에서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를 분별하는 능력은, 일반 시민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일 것이다.

가짜 뉴스 구별하기


가짜 뉴스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판적 사고'가 요구된다. 비판(批判)은 '어떤 사실· 사상(思想)· 행동에 관해서 사실을 근거로 진위(眞僞)· 장점· 단점· 선악 등을 판정하여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는, '비판할 대상에 대한 배경지식(맥락)과 구체적인 증거에 입각하여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보를 선택하고, 경험을 통해 획득된 지식과 정보를 다양한 형태로 융합·적용하여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능동적인 사고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비판적 사고에는 인지적 측면과 정의(定義)적 측면의 사고 성향이 모두 포함된다.  참고로 인지(認知)란,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을 의미하며, 정의(定義)란,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을 의미한다.

가짜 뉴스임을 의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제목의 확인'에 있다. 주류 언론을 포함하여 인터넷이나 유튜브 그리고 SNS 등에서 유포되는 기사나 정보의 제목이, '도덕심', '정의감', '애국심'을 포함하여 감정을 강하게 건드릴 정도로 매우 '자극적인 선정성 제목', 그리고 '~인듯', '의혹', '논란' 등등 무언가를 '선동'하는 추측성 제목이라면, 거의 90% 이상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크다. 또 기사의 내용에서 정보의 출처 혹은 정보 제공자가 불분명하거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이른바 따옴표 일색의 '~카더라 통신'이라면, 거의 100% 가짜 뉴스다. 혹여 가짜 뉴스에서 정보 제공자의 신원과 출처가 확인되더라도, 내용의 사실 여부 확인이 안 되거나 보편적으로 진위의 검증을 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의견(주장)으로 가득한 정보라면, 이 또한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정보 작성자의 확인',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다른 사실 정보들과 비교 확인',  '논리적 오류의 존재 유무 확인' 등이 있다. 참고로 논리적 오류는, 사실이 아닌 의견이나 허위 사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정보의 출처, 제공자, 작성자 이 세 가지 관점에서 공히 가짜 뉴스 또는 허위정보로 의심되는 그 말이, 그 텍스트가 질서 정연한 논리와 개연성 있는 근거를 갖추고 있고, 또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사실 혹은 진실일 거라고 확신하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요, 몰지각한 것이다. 비록 논리적 형태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사실의 검증이 안 되는 주장은 단지 추측에 불과한 개인의 주관적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련 전문가가 아닌 이상 보통의 사람들이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 논리적 혹은 사실적 오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기껏해야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서 혹은 경험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상식의 범주 안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강 혹은 바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믿지 않는다. 하루살이 벌레가 일 년이 365일이고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가 없다. 따라서  '논리적 오류의 존재 유무를 확인'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진 텍스트를 닫고,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상식과 경험도 일단 접어두고, 따로 새로운 창을 열어서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다른 사실 정보들과 비교 확인', 즉 새로운 텍스트들과의 '교차검증'을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수없이 많은 선택과 결정과 판단의 기로에 직면한다. 그러한 기로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의 '진위'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왕이면 거기에다 양심적으로 '옳고 그름'의 여부까지 분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올바른 분별력은 즉흥적인 직관이나 감이 아니라 오직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만 향상된다. 비판적 사고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이다. '기술'이라 함은 태생적으로 형성되는 능력이 아니라, 배우고 익힘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다. 


비판적 사고는,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의도치 않은 '가짜 뉴스의 소비자와 유통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개인 각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다. 다시 말해 비판적 사고는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위해서 개인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과 선택의 결정은 오직 생각하는 주체인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또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도 역시 오직 생각하는 개인에게 달려 있음을 나는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형태의 자유이든 간에 반드시 그에 합당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2021.5.27 쓰고 5.29 다시 정리하고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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