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읽기가 발휘하는 환각성은 요즘 유행하는 어른들을 위한 '인강(인문학 강의)'에서도 나타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지 않아도 그걸 읽어 주는 강의를 들으면 마음이 우아해지면서 서양 고전을 스스로 찾아 읽는 고상한 사람으로 변신합니다. 한글로 된 '맹자'와 '논어'를 손수 찾아 읽지 않아도, 잘 정리된 동영상 강의를 꾸준하게 들으면 인생을 통찰한 어른이 됩니다. 남이 요약해서 이미 다 풀어진 말들을 듣고서 내가 직접 원전을 찾아 능동적으로 글을 읽고 엮어 배웠다고 착각합니다. ...지식을 쉽게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지식이란 주민등록번호처럼 주민센터에 신고하여 취득할 수 있는 신분증이 아닙니다. 지식은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핵심 과정이 읽기입니다. 읽기란 남이 쓴 텍스트와 나의 지식과 경험을 연결하여 새로운 이해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종의 정체성 형성 과정입니다.
-조병영('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쌤앤파커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