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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Oct 04. 2022

개소리

촉(蜀) 땅은 옛날에 이른바 ‘하늘이 샌다’는 험한 곳으로, 늘 비가 내리고 맑게 갠 날이 드물어 사람들이 좀처럼 해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어쩌다가 비구름이 걷히고 맑게 갠 하늘에 해가 한 번 나오면 개가 바로 짖어댄다. 무릇 개한테 짖는 일을 맡긴 것은 괴이한 것을 짖게 하기 위해서다. 해가 짖을 만한 것이라면 해가 과연 괴이한 물건인가? 그 빛이 환하고 그 덕이 순수한 것은 이 해만 한 것이 없는데 저 개가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뿐이다. 개가 해를 보고 짖어대는 것은 울부짖는 데 그칠 뿐이지만, 소인이 군자를 보고 짖어댐은 오직 짖어댈 뿐 아니라 반드시 물고 뜯는데 이른 뒤에야 그치니 끝내 국가에 화가 미치게 한 것이 참혹하다. 참소하고 아첨함이 세상을 가리는 것이 오랜 비(雨) 보다 심하여 촉의 개 같은 무리가 사방에서 떼 지어 짖어대고 멋대로 물어뜯어서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 촉나라처럼 하늘에 해가 없는 정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온 나라에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난무하는 상황은 결국은 국가가 반드시 패망하는 데 이르게 하고 말 것이다. 아, 사람은 참으로 만물의 영장인데 사람으로서 개가 짖어대는 짓을 하고도 오히려 편안히 여기며 도통 부끄러움을 모른다. 


-구봉령(具鳳齡, 1526~1586), '촉견폐일설(蜀犬吠日說)' 『백담집(栢潭集)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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