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딱 한 가지 종류의 나쁜 놈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나뿐인 놈'이다. '나뿐인 놈'이야말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쁜 놈이다. 욕망은 `나뿐인' 인간을 양산하기 위해 악마가 보낸 사육사다. `나뿐인 놈'은 어김없이 `나쁜 놈'으로 성장해서 온갖 범죄로 세상을 더럽힌다." -이외수(1946~2022, '청춘불패')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2012년 개봉한 한국 영화 『범죄와의 전쟁』 뒤에 달린 부제(subtitle)다. 마치 법과 정의보다는 잡범 수준의 힘이 지배하는 작금의 기득권 사회 현실을 미리 예측한 듯이 이야기를 풀어 놓은 감독의 혜안이 존경스럽다. 또 오래전에 본 한국 영화 중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감독, 2008)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온 나름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인간 군상을 세 부류로 나누어 제목을 삼은 감독의 통찰 역시 존경을 표한다.
나쁜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거의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인간 유형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제대로 된 '인간의 품격'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품격이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이다. 다시 말해 사람 된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인격이 곧 인간의 품격이라 하겠다.
“눈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눈도 믿을 수가 없고, 마음은 의지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마음마저 의지할 수가 없다. 사람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제자들은 기억하라” -공자(여씨춘추)
지극히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인간의 품격을 구분하는 나름의 기준은 평소 사람을 대하는 언행과 태도에 두고 있다. 인품은 마치 향기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절로 우러나오는 것으로 사소한 언행과 평소의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사람의 참모습은 이익 앞에서 그리고 밑바닥의 위기 상황에서 어김없이 그 실체가 드러난다.
정작 문제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같은 공간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함께 부대끼며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한,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상대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가늠조차 매우 어렵다는 데에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심지어 날마다 함께 하면서도 상대의 속내나 참 모습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품격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실제로 파악은 물론 추측조차도 어렵다.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은 그 깊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그만큼 복잡하고도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관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 혹은 이상한 사람이 아닌, 진짜 나쁘고 사악한 사람을 콕 집어낼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은 없을까? 다행히 현대 심리학에서 특히 성격 심리학에서 그 판별 기준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성격심리학에서 "어둠의 삼요소(The dark triad)"를 이루고 있는 유해한 성격유형들이 있다(D.L.Paulhus, K.M.Williams 2002).
성격심리학에서 "어둠의 삼요소"는 ①나르시시즘, ②마키아벨리니아니즘, ③사이코패스를 말한다. 이 세 가지 유형에 속하는 성격 유형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원치 않는 행동 즉 악의적 행동 특질을 공통적으로 공유하면서도 제각각 독특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나르시시즘 성격의 주요 특징은 과대성(지나친 우월감/자만심/오만함), 지나친 자기애(자부심), 이기심, 선택적 공감(공감 부족) 등이다. 마키아벨리아니즘 성격의 주요 특징은 타인에 대한 조종과 착취, 상황 조작과 왜곡, 도덕성에 대한 냉소적 무관심(도덕성 결여), 정서적 냉담성, 선택적 공감(공감 부족), 이기심, 자기 이익을 위한 전략적 집중 등이다. 쉽게 말해서 상습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도구로 이용하고 조종하거나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이다. 이들을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 또는 '조작의 달인(Master Manipulator)'이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 성격의 주요 특징은 지속적인 반사회적 행동, 충동성, 공격성, 이기심, 공감력 결여, 정서적 냉담성, 잔혹성 등이다.
위의 세 가지 성격 유형을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어둠(Dark)' 특성으로 규정하여 하나로 묶은 것은 각각의 성격유형이 사회적으로 원하지 않는 악의적인 행동(반사회적 행동) 특질을 공통으로 포함하는, 아주 위험하고도 불안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키아벨리안은 나르시시스트보다 사이코패스와 더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을 보통 사람들과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포인트는 자신들이 일상사로 저지르는 명백한 악행을 그게 잘못된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고 또 경험했다. 그야말로 천태만상인 그들 중에는, 인간적이든 비인간적이든 선하든 악하든 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이든 평범하든 간에, 똑똑하고 재능 많고 매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더하여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거칠고 거만하고 오만방자하기까지 하고 인성마저 최악인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마치 세상을 소유한 것처럼 우쭐대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좋아하며 행동거지과 인성 또한 개차반인 사람도 있었다. 또 매우 이기적으로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행동하며 오직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이용하고 상황을 왜곡 · 조작하며 타인의 의지와 행동까지 교활하게 지배하는 사악한 사람도 있었다. 열거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둠의 삼요소' 특질이 한두 가지 이상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글의 서두에서 인용문으로 언급한 이외수 선생의 통찰은 옳다. '나뿐인 놈'은 그야말로 '어둠의 삼요소' 성격 특질을 골고루 갖추고 행동과 태도는 물론 인성마저 사악한 나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나뿐인 놈'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쁜 놈이라고 규정한 이외수 선생의 통찰은 옳다. 참고로 '놈'이라는 우리 말은 한자로 '자(者 사람 자)'다. 따라서 나뿐인 '놈'은 당연히 여자도 포함된다.
"우리가 사는 동네 저 골목에서 우리는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부유할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으며, 유식할 수도 있고 무식할 수도 있다. 그들이라고 해서 유별난 요소는 결코 없다. 그들은 게시판에 나붙은 지명 수배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학교 교사로서, 경찰로서, 금융인으로서, 사회단체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건실한 시민' 일 가능성이 많다. 드러나지 않고 지명되지 않았다는 점과 생명과 생명성을 역류하여 '범죄를 저지른다'라는 차원에서 그들도 역시 범죄자인 것이다. -M. 스캇 펙(1936~2005), 「거짓의 사람들」(윤종석 옮김, 비전과 리더십, 2007)
정리하자면, '나뿐인 놈'들은 오직 자신의 안일과 이익만을 추구하고 도모하는 탐욕스럽고 냉담하고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다. 자신의 안일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도구로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남이야 상처를 입든 말든 아파하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 자기로 인하여 남이야 죽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사회가 무너져도 상관없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저만 잘되면 만사 오케이다. 자신의 악행이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나지 않는 한 한 사람의 건실한 시민이요,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떳떳하고 당당한 선량한 시민, 정의로운 시민으로 행세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M.스캇펙의 말을 빌리면, "그들의 선함이란 모두 가식과 위선의 수준에서 선함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거짓이다".
우리 사회를 삭막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진정한 공공의 적, 열린 사회의 진짜 적은 바로 이들이 아닐 수 없다. 환경은 공동체의 발전은 물론 개인의 인격 형성과 변화에 일생동안 큰 영향력을 끼친다. 그게 선한 영향력인지 악한 영향력인지에 따라 그 변화의 수준이 선과 악 또는 빛과 어둠으로 극명하게 갈라진다. 수 천년 전 중국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묵자(墨子)는 '검은 먹물을 가까이하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검은 색으로 물든다(近墨者黑, 근묵자흑)'라고 통찰한 바 있다. 또 철학자 니체는 "괴물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선악의 저편」, 1886)" 라고 통찰했다.
이러한 선각자들의 통찰은 현대 사회 심리학에서 "미러링(mirroring),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 카멜레온 효과(chameleon effect), 거울효과(Mirror Effect)"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입증된 바 있다. 행여 이런 사람들이 주변 혹은 가까이 있다면, 개인적인 접촉이 가능한 소통의 통로를 모두 차단하는 등 접촉의 여지를 단절하고 아예 멀리 피하는 게 가장 상책이고, 가능하면 이들과 엮이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쁜 사람보다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기억되기를 바랄 것이다. 다행히 최근의 성격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나쁜 사람은 타고날 수도 있고 동시에 환경이나 교육, 의지 등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타고나는 기질과 성장 및 생활 환경때문이다. 유전적/신경생물학적/신경약리학적/생물사회학적 데이터를 기반한 최근의 인격 이론(Cloninger,Svrakic& Przybeck,1993)에 따르면, 인격(personality)은 성격과 기질이라는 하위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기질(temperament)은 자극에 대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 성향으로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성격(Character)은 기질이라는 원재료를 가지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지속적으로 발달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유전학자인 클로닝거(C. Robert Cloninger)의 연구에 의하면 특정 기질이 개인의 성격 특성을 결정하거나 자칫하면 성격 장애로 발전할 위험성의 소지를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겪는 경험에 따라서 어떤 특성은 매우 쉽게 발달을 초래하는 반면 다른 특성은 거의 발생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타고난 기질 특성때문이다. 또 성격(character)의 발달은 개념적인 학습의 형태로 습득이 되며 명제적 기억 체계의 변화를 수반한다(Cloninger, 1993).
다시 말해 유전학적 · 신경생물학적 인격 연구를 통해, 정말 다행스럽게도 어린 시절 성장 배경과 과정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환경, 상황 등을 통해 얻은 직·간접적인 경험 그리고 교육, 개선의 의지, 인간다움을 향한 자기 노력, 학습 등을 통해서 인격이 변화하고 성숙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이 되고자 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다." -칼 로저스(1902~1987)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완벽하게 좋은 사람, 완벽하게 나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격적인 결함은 누구나 최소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 자신의 결함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그 결함과 실수을 개선하고자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람,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오직 자기만 위하는 '나뿐인 사람'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한 드러나지 않은 범죄자로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쁜 사람으로 발전하고 진화할 가능성마저도 다분히 있는 것이다.
최근에 본 외국영화 『더 이퀄라이저 3』에 나온 장면의 대사가 제법 오랜 시간 기억에 맴돈다. 주인공을 치료해 준 의사가 주인공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 " 라고 물었을 때 주인공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날의 질문에 관한 대화 끝에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모르겠다는 그런 대답은 좋은 사람만이 할 수 있어요". 자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또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복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나는, 이로써 작은 위안을 삼는다. 근데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요?(202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