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은 당하는 것이지 스스로 청하는 것이 아니다. 도의적으로 책임을 느끼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해줄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피해자를 희생자라고 부르면서 양심을 챙긴다. 피해자라고 부르면 가해자를 찾아서 처벌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희생자라고 부르고 나면 그런 책임이 사라진다. 가해 주체를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희생자라고 부르고 나면 사건이 종료된다. 희생자는 비유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무고한 피해자에게 도의적으로만 보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희생자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희생자는 그 단어를 쓰는 사람에게만 자기만족과 자기위안을 주는 단어이다. 자기만족에 매몰된 사람은 당사자의 입장을 무시한다. 자기밖에 모른다. 죽어도 피해자이고 살아도 피해자이다. 희생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 앞에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것이지 희생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읽어야만 오해를 하지 않도록 돼 있는 것, 오독하기는 쉽고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것, 이런 것을 함정이나 꼼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피고인은 전문가로서 잘 알고 있었으면서 아는 것을 생략하고 의도적으로 예외적인 것을 과장하여 독자를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실질적인 폭력이었다. 권력자가 행사하는 표현의 자유는 언어폭력이었다. 저자는 전문가로서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권력자였다.
-박금산 소설, 『남자는 놀라거나 무서워한다』(도서출판 비,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