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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Apr 17. 2024

변질된 PC주의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조지오웰('동물농장' 1945)


PC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뜻이다. 옥스포드 사전에는 'political correctness'를 이렇게 설명한다. "특정 그룹의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언어나 행동을 삼가는 원칙". 


나름 정리하면, "PC주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행태(혐오, 비하, 모욕, 조롱, 편견 등의 의미가 담긴 용어 또는 언어표현, 사회적 차별 행위)에 대해 저항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신념, 철학 그리고 그에 기반한 실천적 사회 운동"을 말한다.  근본적으로 PC주의는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간 존엄성 보장의 측면에서 특히 인권, 평등, 공정, 사회정의 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굉장히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사상이다.  


현실에서 PC주의는 주로 인종 차별 반대, 소수자(장애인, 동성애자 등등) 차별 반대, 여성 차별 반대 등의 사회 인권 활동(운동)을 한다. 최근에는 그 개념과 활동 범위가 확장돼 미디어와 영화 및 게임 등에서 균등한 역할 배분, 사회 각 분야에서 소수자 우대정책, 그리고 다문화주의와 환경주의까지 포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PC주의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사건은  디즈니의 인어공주에서 흑인 인어공주가 등장하면서 부터다.


이성적 사고를 가진 인간다운 현대인이라면, 사람을 인종, 성별, 성적기호,  외모, 외형적 다름, 사회적 지위, 경제적 소유(빈곤) 등등 어떠한 이유로든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PC주의의 사상을 기꺼이 동의하고 지지할 것이다. 실제로 정치 사회적으로 인간 존엄성 보장의 차원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선한 영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행사하였다.


현재 PC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초기와는 달리,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집단 우월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에 기반한 극단적 PC주의로 변질하였다.  비근한 예를 들어, 최근의 여성 인권운동에서 남성 혐오주의 그리고 남성을 열등종족으로 비하하는 극단적 여성 우월주의(급진적 페미니즘)의 이념적 근거의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다시말해 PC주의의 최근의 문제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의 실종과 함께 사회 전 분야에서, 개인 및 공공의 의무와 책임은 깡그리 도외시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권리만을 앞세워 특별한 대우와 혜택을 요구하는 극단적인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된 PC주의에 있다. 자신들의 주장과 이율배반적 행태를 비판하고 잘못을 지적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차별주의자로 혐오하고 극단적으로 적대시한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소시오패스에 버금가는 악행과 언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변질된 PC주의의 키워드는 공교롭게도 PC주의 사상이 부단히 근절하려고 시도했던 특권의식과 더불어 차별, 혐오, 조롱, 비하, 악마화 등등의 언어폭력이다. 그야말로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 밤낮으로 우리는 여러분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농장의 모든 우유와 사과를 전부 독점하고 오직 우리들만 그 우유를 마시고 그 사과를 먹는 것은 바로 당신들을 위한 것이지요." -조지오웰('동물농장' 1945)


평등(平等)은 '인간의 존엄, 권리, 인격, 가치, 행복의 추구 등에 있어 누구나 차별없이 동등한 상태'를 뜻한다. 평등, 공정, 공평, 자유, 정의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진실로 각성된 인간적인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다. 평등을 기본으로 하여 '개인의 기여에 비례하는 합당한 분배나 보상'의 개념에 준하는 공평이 등장하고, 그러한 공평을 바탕으로 비로소 윤리적 도덕적으로 올바름을 뜻하는 공정(公正)을 말할 수 있다. 굳이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공평, 공정이 무시된 평등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평등, 공평이 전제되지 않은 공정(公正)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적 차원 혹은 선택적 차원에 치우친 공정은 정의심(定義心)의 발로가 아니라 정의(定義)로 위장된 이기심의 발로에 불과하다. 정의(定義)는 개인적 또는 선택적 공정이 아니라 사회적 공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 존재방식에서 서로 다름의 인정(認定)이 선행되지 않은 평등에 관한 옳고 그름의 담론 또한 논할 가치가 없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고, 또 공감한다'라는 의미가 그 말의 밑바탕에 깔려 있기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냉철한 머리에서 나오는 지성(知性)의 차원이라면, 이해, 존중, 공감은 따뜻한 가슴에서 나오는 인간성(人性)의 차원이다. 아무리 옳고 바른 말이라 할지라도 집단의 우월성, 특권의식, 이기심, 그리고 공격적인 언어폭력과 현학적인 언어유희를 동원하여 아무리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대중에게 옳고 그름을 억지로 강요한다고해서 인간다움의 올바른 정신과 가치는 결코 쉽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공손추상')


AD 2세기 경, 그리스의 여행가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에 이런 격언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노티 세아우톤!"(너 자신을 알라!). 신념도 좋고 사상도 좋다. 대의(大義)도 물론 좋다. 그러나 그 전에 반드시 선결되어야만 할 일이 있다: 가장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일이다.(202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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