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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Apr 24. 2024

수필

수필가의 경우는 아무리 문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빈약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훌륭한 글을 쓰기는 매우 어렵다. 수필이 주는 감명이 문장력에서 오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필자의 인간성에 대한 공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훌륭한 인격자가 남다른 문장력으로 자서전을 썼을 때 가장 좋은 수필이 탄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 특별나게 사람이 잘날 필요는 없으며, 오직 세상과 자기 자신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수필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인 까닭에, 미화(美化)의 속임수는 더욱 큰 감점의 이유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보여주는 글이 좋은 수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가 화장을 하고 싶듯이 수필가도 자기의 몸에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싶어 한다. 이 유혹을 뿌리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전문적 수필가일수록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비법을 알고 있다. 전문가의 수필이 간혹 감탄과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사유가 여기에 있으며, 정말 좋은 수필을 쓰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태길(1920~2009), 『김태길 수필선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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