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이상 죄는 아니 지을 수 없다”. 스스로 면허권을 내리고, 그 다음은 그저 무조건 사죄만을 바라는 것은 교리의 말을 빌린 하나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연약함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저 주는 복만을 바라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은 죄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지 결코 덮어놓고 무조건 그러시는 것은 아니다. 연잎이 물에 젖지 않는 것은 젖지 않는 성질을 제 속에 길러내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누가 거기 무슨 칠을 해주어서는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뺑끼칠장이가 아니다. 그런 따위 그릇된 신앙이야말로 이 세상의 권세자와 야합하여 역사를 언제까지라도 구정물 속에 썩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가리켜 예수는 “거룩한 것을 돼지에게 주는 것”이라 했다. 예수께서 “남을 판단하지 마라” 한 것을 반대할 양심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지로는 꼭 같은 도둑, 강도가 앉아서 남을 능히 재판하여 징역을 시키고 사형에 처하는 것은 무엇으로써 능히 그렇게 할까? 제도와 법의 그늘에 숨어서다. 제도와 법을 만드는 것은 이성(理性)인데, 이성이 스스로 절대의 영(靈)의 다스림 받기를 거부하고, 자기 홀로 서는 것을 자유요 독립이요 인간의 존엄으로 거짓 해석을 붙이기 시작했을 때 현대의 횡포와 혼란은 벌써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절대의 영(靈)을 세상 밖에다가 두고 무조건 복종을 강조하는 정통주의적인 종교에서도 위에서와 마찬가지의 협잡이 일어난다. 우리를 정말 자유롭게 하는 진리의 신은 초월적으로 계시는 동시에 반드시 또 내재하시는 이여야 한다.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정치주의는 무조건 복종을 찬양하는 종교에서 나온다.
-함석헌(1901~1989),『바가바드기타』(함석헌주석, 한길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