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적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동시에 누구나 '자신'은 무슨 신기한 수가 있는지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속물근성'이란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는 확인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예외인 '악덕'이다. '믿음과 실천'을 겸비한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은 적어도 '자신'만큼은 계급적 불의를 당연히 벗어나 있는 줄 안다. 자기 이웃들과는 달리 부나 서열이나 작위 같은 부조리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나는 속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무슨 보편적인 '신조'처럼 되어버렸다. 유감스럽게도 계급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 진전도 있을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랄 ‘필요’는 있되,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 바람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직시해야 할 사실은, 계급 차별을 철폐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다. 계급적 특권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은밀한 속물근성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취향과 편견도 억눌러야 한다. 나를 철저히 변화시켜야 하며, 결국엔 같은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
-조지 오웰(1903~1950),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