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하게 속이고 아첨하며 일생 동안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어 비록 꾸미는 데 익숙하여 스스로는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 가려진 것이 매우 얇으므로 가리면 가릴수록 나타나니, 고생스럽기만 할 뿐이다. 무릇 말을 함에 있어 진심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와 해야지, 단지 목구멍과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상투적인 말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음흉한 사람이 안 된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나는 하고, 남이 하는 것을 내가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행동을 하려 해서가 아니라 선(善)함을 택하였을 뿐이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나 역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나 역시 하는 것은 맹종하려 해서가 아니라 옳은 것을 따랐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아는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독서하여 얻는 것은 정신을 기쁘게 함이 최상이요, 그 다음은 수용(受用)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널리 아는 것이다. 글을 많이만 읽는 것을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섭렵하라는 것은 아니다. 많이만 읽고 연구하지 않으면 막히고 고루해지는 병통이 있기 때문이다. 군자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먼저 좁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 마음이 좁으면 곧 남을 의심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먼저 그의 작은 허물을 살폈다가 그가 가기를 기다려 곧 비웃는 자를 '물여우의 무리'(狐蜮之倫 호역지륜)라고 한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