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일로 세상을 속인다면 사람들이 다 믿지 않지만,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조작한 허위(虛僞)의 일로 세상을 속이면, 실상을 파악하고 아는 자는 믿지 않더라도 모르는 자는 믿는다. 이처럼 성실의 학문은 세상을 속일 수 없으나 허위의 학문은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을 속일 뿐이다. 스스로 옛사람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마침내는 뒷사람을 속이기에 이르니, 허위의 뿌리(虛根)는 뽑기 어렵고 허위의 근원(虛源)은 막기 어렵다. 매양 실제로 하는 일과 행동마다 마음의 중심(中心)이 베푸는 것이 모두 허황된 것이면 마음과 실제가 서로 어긋나므로 실지(實智)는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사람을 속이게 되어 버린다. 하루 이틀 한번 두번 날마다 자꾸 거듭하여 생애(生涯)를 마칠 때까지 허황되고 그릇된 길로 빠짐을 면치 못하면서도 스스로는 뉘우칠 줄 모르니, 실상을 아는 자는 이름을 도둑질한다고 비방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자는 이런 허황되고 그릇된 자를 일컬어 신령스럽고 오묘한 사람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서로 전한다.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인정(人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