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기(自己)를 극복하지 못하고 나를 앞세우는 태도가 있을 경우에는, 비록 그가 읽는 책이 성현(聖賢)의 책이고, 입는 옷이 성현의 옷이며, 행실이 성현의 행실을 따르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천하의 용렬한 사람들과 끝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용렬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면, 이는 안될 말이다. 더욱이 천하의 용렬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자기 도학(道學)의 당을 만들어 당세에 호령하며 남들이 감히 자기 잘못을 거론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옛 성현들과 비교하여 어떠하겠는가? 자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나를 앞세우는 태도는 나날이 커지며, 사사로움은 나날이 굳어지고, 이익은 나날이 쌓여간다. 그 누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쌓이는 이런 도학(道學)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랴! 그리하여 경쟁하고 서로 적대하고 빼앗는 형국이 만들어지고 화란(禍亂)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건창(李建昌, 1852~1898), '원론(原論), 『명미당집(明美堂集)/명미당녹고7(明美堂簏藁 七)/ 卷11』
※용렬(庸劣): 사람이 비겁하고 좀스러우며 변변치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