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최후의 망상

by 파르헤시아

어떤 사람이 교육을 받아 머릿속이 책으로 무장한 병기고가 되면, 젊고 건방진 그가 지구상에 감춰진 모든 지식을 발견하겠다며 즐거워 날뛰게 되면, 그는 새로 부상하는 진실의 중요성을 과대포장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업신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원래 그런 거라네. 인간의 비극이란 게, 일단 완성되고 나면 언론인들한테 넘어가 오락거리로 전락하지. 그건 그 말도 안 되는 미친 이야기들이 우리의 문턱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고, 신문의 어설프고 의심스러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야. 난 매카시의 시대가 전후에 가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민주공화국을 통합시키는 이념으로 끌어올려진 가십의 승리를 선포한 시대라고 생각하네. 우리는 가십을 믿노라. 가십이 복음이고 국교가 됐지. 매카시즘은 결코 진지한 정치의 출발점이 아니라 대중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진지한 모든 것을 오락거리로 만드는 행위의 출발점이었네. 지금은 도처에 만연한 미국인의 몰지각함을 전후에 처음으로 활짝 꽃피운 게 매카시즘이었어. 매카시가 애국심을 앞세워 이끈 여론 조작 재판은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했네. 카메라를 비추면 바로 현실 같은 거짓된 진실을 보여주지. 매카시는 입법을 업으로 삼은 자들이 연기를 하면 훨씬 유리하다는 걸 앞선 어느 정치인보다 잘 알았다네. 또 굴욕이 오락으로 가치가 있다는 걸 이해했고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과대망상의 쾌락을 제공할 수 있는 지도 잘 알았어. 도덕적으로 망신을 주는 게 대중의 오락이었어. 볼거리가 난폭할수록, 비난이 격렬해질수록 방향 감각은 사라지고 재미는 만발하거든. 내가 살아오면서 노력했듯 종교,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같은 명백한 망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도, 여전히 자신의 '선량함'이라는 신화는 족쇄처럼 남는다네. 그게 최후의 망상이지.


-필립 로스(Phillp Roth), 장편 소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원제 I Married a Communist.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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