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곤 한다. 때로는 '옳지 않다'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릇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종종 선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어떤 게 더 옳은 선택일까?"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해야 할까? 아니면 이번 한 번만 눈을 감아야 할까?" 이렇듯 우리는 늘 '무엇이 옳은가'라는 정답지를 찾기 위해 질문하며 나름 애를 쓴다.
하지만 2022년 1월 비즈니스 윤리저널(JBE)에 발표된 MIT의 한 흥미로운 연구 논문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논문은 윤리적 의사결정을 분석할 때, 단순히 행위중심의 관점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넘어서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인격과 품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인격 렌즈(The Character Lens)'라는 '도덕적 인식 과정'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의 내면적인 인격 특성(Character)이 주변 상황을 도덕적으로 해석하고 최종적인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Helzer, Erik G., Cohen, Taya R. and Kim, Yeonjeong, 'The Character Lens: A Person-Centered Perspective on Moral Recognition and Ethical Decision-Making', 2022)
요약하자면,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라는 사람의 '인격(Character)'이라는 것이다. 즉, "무엇이 옳은가?"라고 묻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영어 '캐릭터(Character)'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카라세인(kharassein)'에서 유래되었다. '카라세인(kharassein)'은 '날카롭게 하다', '새기다', '조각하다'라는 뜻의 동사다. 이 단어는 시간이 흐르며 '도구'에서 '흔적'으로, 그리고 라틴어에 유입되면서 점차 ''특징', '개성', '내면의 성격'. '인격'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오늘날에는 크게 세 가지 맥락으로 쓰인다. 즉 동물을 포함한 등장인물, 개성 및 성격(인격), 상징물(마케팅)에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캐릭터는 "독창적인 외형과 성격(정체성)을 부여받아 생명력을 가진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결국 '캐릭터(Character)'라는 단어는 "누군가나 무언가를 구별하기 위해 깊게 새겨진 고유한 흔적"이라는 핵심 의미를 담고 있다.
인격 렌즈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개인이 현재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이 그들의 더 넓은 도덕적 인격의 지속적인 특징이며, 윤리적 의사결정에서의 차이는 사람들이 현재 맥락에 의미를 부여하고 중의성(ambiguity 重義性)을 구분하는 방식은 '도덕적 인식'의 차이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도덕적 인식'의 차이가 바로 사람들이 내린 윤리적 선택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참고로 심리학에서 '도덕적 인격' 또는 '인격'은 '개인을 다른 개인과 구별 짓는 여러 자질의 총체'를 의미한다. 성격 심리학 분야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교육자인 로렌스 A. 퍼빈(Lawrence A. Pervin)은 도덕적 인격을 "다양한 상황에 걸쳐 일관된 기능 패턴으로 행동을 표현하는 성향"이라고 정의했다. 정리하면 '도덕적 인격'이란, 개인의 변함없는 도덕적 자질 즉 공감 , 용기 , 인내, 정직, 의리, 충성심과 같은 미덕의 유무 또는 바람직한 행동이나 습관을 포함하여 다양한 자질과 속성을 아울러서 표현하는 용어다.
또 '도덕적 인식(Moral Cognition/Perception)'은 도덕적 가치, 규칙, 문제를 식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으로, 상황 내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인지하는 도덕성의 인지적 측면을 말한다. 도덕적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도덕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바로 '도덕적 인식'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윤리의 핵심이라고 통찰하였다. 좋은 습관이 쌓여 형성된 '덕(Virtue)'이 결국 올바른 '실천적 지혜(Phronesis)'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인격 렌즈 논문의 주제인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의사결정의 핵심이라는 포인트는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품성(도덕적 인격)'의 중요성을 현대 심리학적 데이터로 증명한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심리학자 아우구스토 블라지 (Augusto Blasi)는 도덕적 판단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연구하며 ‘도덕적 정체성(Moral Identity)’이라는 개념을 확립하였는데, 이또한 도덕적 인격과 인격 렌즈와 같은 맥락 선상에 있다. '도덕적 정체성'은 개인이 자신을 도덕적인 사람(예: 정직, 배려, 성실, 의리,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도덕적 특성을 자아의 핵심 부분으로 삼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는 도덕적 판단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줄여 도덕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강력한 내적 동기가 되며, 아는 도덕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핵심 요소로 작용된다.
도덕적 정체성은 단순히 도덕적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 도덕적인 삶을 자율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인성의 기본 요소인 것이다. 즉 어떤 사람에게 도덕성이 자신의 자아(Self)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느냐(Identity Centrality)'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이 강할수록 도덕적 의무감을 더 강하게 느낀다.
안경에 색이 들어가 있으면 세상이 온통 그 색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의 인격은 세상을 바라보고 또 해석하는 '렌즈' 역할을 한다. 즉 개인이 가진 도덕적 성품 또는 인격은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와 같은 것이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높은 수준의 도덕적 성품을 가진 사람은 상황 속에 숨겨진 도덕적 가치를 더 예민하게 포착(도덕적 인식)한다. 다시말해 도덕적 인격이 높은 개인들은 도덕적 고려를 무시하라는 압력이 커지는 와중에도 높은 도덕적 인식을 유지한다. 한 개인의 도덕적 인격은 단순히 도덕적 행동을 하려는 의지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단계인 '상황 파악(Recognition)' 단계에서부터 개입하여 전체적인 윤리적 판단 과정을 이끄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길가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을 때, 누군가는 '주인이 얼마나 당황했을까'라는 걱정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반면 누군가는 'CCTV가 어디 있지?'라며 주변을 살피거나, '오늘 운이 좋네'라며 횡재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갑을 돌려줄지 말지 고민하기 훨씬 이전 단계, 즉 지갑을 본 '찰나의 순간'에 이미 나의 인격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소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공감과 정직을 내면화한 사람에게는 그 지갑이 마땅히 '돌려줘야 할 물건'으로 자동 인식된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임자 없는 물건'으로 보일 뿐이다. 결국 윤리적인 행동은 억지로 짜내는 결심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결과물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도덕을 '지켜야 할 복잡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황에 닥쳤을 때만 급하게 도덕책을 뒤적거리듯 정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심리학의 여러 연구들이 말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은 도덕적인 문제를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마치 평소에 운동을 해서 기초 체력을 기른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서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평소에 내가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며 내면의 '렌즈'를 깨끗하게 닦아온 사람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옳고 그름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판단을 주도하는 것은 개인이 가진 도덕적 인격이라는 렌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우리를 가끔 지치게 한다. 정답이 없는 상황도 많고, 상황에 따라 옳은 기준이 변하기도 하니 더욱 그렇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아끼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를 인지적 구두쇠 (Cognitive Miser)라고 한다. 뇌의 입장에선 깊게 고민하고 도덕적 가치를 따지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복잡한 상황이 닥치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휴리스틱, 즉 익숙한 습관이나 편한 방식'을 선택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뇌가 취하는 또다른 휴리스틱은, ① 미래의 큰 보상보다 눈앞의 즉각적인 작은 보상을 더 선호하는 경향인 '쌍곡선 할인(Hyperbolic Discounting). ②이미 쏟아부은 시간, 돈, 노력이 아까워서 잘못된 선택임을 인지하고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현상인 '매몰 비용의 오류', 이는 미래의 이익보다 과거의 투자에 집착하여 더 큰 손실을 초래하는 심리적 함정이다. ③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 즉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 혹은 사회적 가치관과 어긋날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극심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행동을 고치기보다는 생각을 바꿔버리는 쪽을 택한다. 즉 자신의 행위에 '정당한 명분'을 부여하며 자기를 합리화함으로써 그 불편함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질문의 방향을 냉정하게 나 자신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점차 달라진다.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타인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작은 약속이라도 무겁게 여길 줄 아는 사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 사람냄새가 나는 인간다운 따뜻한 사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 등등. 이런 '나의 모습'이 구체성을 띄고 선명해질 때, 우리는 내면의 복잡한 계산기 없이도 홇은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돼지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인다"
위의 인용구는 조선 시대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농담으로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는 최근의 인격 렌즈 이론보다 600여년 앞선 무학대사의 통찰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우리나라 속담도 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이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두고 있는 것만이 눈에 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속담은 사람이 특정 대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편견을 가질 때, 그와 관련된 것만 편향적으로 치우쳐 보게 된다는 상황을 조롱할 때 주로 사용된다.
각설하고 결국 우리가 저마다 올바른 선택을 하고, 세상을 밝히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도덕 이론이나 윤리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맑은 인격의 렌즈일지도 모른다. 1980년대 유명한 개그맨이었던 김병조는 당시 유행어로 이런 말을 남겼다. "먼저 인간이 되거라!" (202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