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걸 이루게 해주는 직감 따르기
진짜 하고 싶은 걸 찾고 직감을 따라 선택했던 연습 1년,
그렇게 찾은 거제도 드림 하우스에서의 3년,
추울 땐 태국으로, 더울 땐 베트남 달랏으로 맘껏 돌아다닌 1년,
본격 글을 쓰기로 한 2025년.
5년의 기록을 풀어냅니다.
- 하고 싶었던 원함을 직감 따라 자연스레 이루었던 경험
(1) 그림 그리기
8주간 매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쓰는 '모닝페이지' 작업을 하면서. (책 아티스트웨이에 실린 내면 글쓰기 방법) 그 작업 결과 내 안의 켜켜이 묵었던 온갖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내가 계속 무시하고 있었던 어릴 적 내가 바란 것들이 있었다.
"로원아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아무런 조건이 없다면 뭘 하고 싶어?"
나는. 연기를 하고 싶어
나는. 노래를 하고 싶어.
나는. 피겨를 타고 싶어.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어릴 때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들,
연기라는 나의 첫 번째 업. 그러나 어떠한 한계들을 맞아 고작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그만두어야 했던 것들. 나는 이것들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그때의 나는 일로써 내 존재를 증명해내고 있던 중이라. 대단히 건강치 못한 상황이었거든. 외적 몸의 건강도, 내면도. 우울증과 번아웃은 온 지 오래였지만, 사업이라는 특성상 그런 것들을 들여다 보기엔 당장 쳐내야 하는 것들이 눈앞을 가렸으니까. 그럼에도 책임감, 어떤 사명감으로 버텼던 것 같다. 그러다 찾아온 코로나는 나를 억지로 멈추게 만들었는데, 그것 역시 자연스럽게 찾아온 감사한 흐름이었다.
내 전공은 무역학과/정치외교 복수전공이다.
하고 싶어 한다는 것들이 죄다 예술적인 건데. 나는 전공도 아니고
중학생 이후로는 그러한 것들을 해준 적이 없어서 뭘 어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들어가는 시간과, 돈, 그 선택으로 포기하는 어떤 기회비용까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내 연습은 아주 작은 마음의 소리들부터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산책을 가고 싶어!... 아, 일하는 도중이지만 가자!" (코로나 시절 공기가 귀했던)
"오늘은 이 길 말고 다른 길로 가볼까?"
"갑자기 산이 가고 싶군. 1시간이 걸리는데.. 아 그냥 가보자!"
그렇게 연습하던 몇 개월 차. 나는 그림이 몹시 그리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내 안에 가득 있었고 스케치북이건 교과서건 늘 낙서하고 자유롭게 그려왔었다. 그런데 그림을 안 그린 지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의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 하니,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그리고 싶은 게 없었다.
어릴 때는 그렇게 그리고 싶은 게 많았는데. 어른이 된 나에게는 '그냥' 그리고 싶은 것 자체가 없어진 거다.
그래서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리고 싶은 것도 없고, 그리는 방법도 모르겠고. 색칠은 또 어떻게 하는 건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없고 뭘 그려야 하나 싶기도 해서 처음엔, 피아노와 그림 수업을 함께 들을 수 있는 성인 전용 학원을 등록했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예전만큼 못 그리면 너무 슬플 것 같단 마음에 수업도 그림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나는 아크릴로는 그려본 적이 없었는데 그게 너무 그려보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서 학원에서도 몇 번 물어보기만 하고 시작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던 어느 날, 한 번 간 적이 있는 갤러리의 관장님이 페이스북메세지를 보내셨다.
정말 뜬금없이, 갑자기.
'로원님, 오늘 작가님이 진행하시는 원데이 클래스가 있어요!'
간략한 설명과 신청 링크를 받았는데, 어? 뭐지? 나 마침 그림 그리고 싶었는데!! 라는 마음이 듦과 동시에.
'근데 어떤 그림을 그리는 거지? 그냥 드로잉 하고 끝나는 건가? 참가비는 10만 원이네?'
신청서에는 어떤 종류의 그림인지 자세한 내용도 없었고 자세하게 물어보기에는 연락 주신 분이 너무 바빠 보였다. 그 당시 나는 대전에 있었고. 고작 그림 하나 그리겠다고 서울까지 가는 건.. 그리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왕복 4시간이라는 소요 시간과 10만 원이라는 참가비가 저렴한 건 아니라 꽤나 고민이 되었었는데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내 내면의 순수한 아이의 상태에서 결정을 내린다면? 하고 물어보았을 때의 내 결정은 그게 무슨 내용이던 가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극강의 효율과 현실적인 머리를 늘 써왔던 내가. 단순히 저 이유로 간다는 건 말이 안 되었지만.
마음은 다르게 말했다.
"우와. 재밌겠다. 나 하고 싶어"
나는 그 소리에 손을 들어줬다.
서울을 가는 기차에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맞나? 괜히 갔다가 실망하면 어떡하지?
어쨌든, 나는 이 마음과 이성의 소리의 치열한 싸움에 대한 결과를 꼭 기록하고 나중에 비교해 보겠다며 과연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내맡기고 갔는데...
도착해서 알고 보니 정말 신기하기도 그날의 원데이 클래스는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하는 것이었다.
꼭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또한 작가님과 함께 그리고 싶은 것을 정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법부터, 밑그림, 채색, 그림 완성까지 하는 클래스였다. 총 4시간이나 진행되는 고퀄리티 클래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은 작가님에게 실례가 되는 부분이기에.
현재 전시 중인 작가님이 진행하는 원데이 클래스는, 흔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은 그 신기한 클래스가 열렸었던 거고 나는 그곳에 끌려갔던 거다.
도화지와, 캔버스, 그리고 아크릴 물감.
오늘 그릴 그림의 주제는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
작가님의 가이드에 따라 먼저, A4용지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키워드를 나열하고 그것을 떠올리며 슥슥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네모난 화면 안에 그것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모습을 그릴 건지를 연습한다. 처음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라는 주제에 가장 먼저 키우고 있는 반려 앵무새 ‘아가’를 스케치했다. 그러다 좀 더 본질적으로 내가 소중히 하고 사랑하는 것은 ‘나와의 대화’ 시간이라 생각되어 명상과 글쓰기를 통한 일련의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변화하는 그 일련의 변화를 이번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그 당시 나는 매일 꽃과 함께하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우울증과 여러 강박증, 불면증에 힘들어하는 날 보고 명상이 좋다며 추천했던 지인의 말과,
어느 날 꽃 선물이 들어왔고, 그날 유튜브에 다양한 명상 가이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꽃을 보면서 시작한 명상이 꽤나 집중에 도움이 되어 그날로 매일 명상을 하게 되었던 터였다.
그를 통해 깨달은 것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걱정도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는 법'이었다.
두 가지 어느 것도 내가 손댈 수 없다. 현재는 과거의 나의 결과이고, 미래는 지금 나에 따라 만들어진다.
지금의 나를 방해하는 것은 대게 과거의 어떤 나쁜 기억이거나, 미래의 불안과 걱정이기에.
이것들은 실체가 없는데 단지 내가 붙잡고 있기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집중하는 것의 소중함. 그걸로 인해 변화되는 중인 나.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매일 내 방에서 꽃을 보면서 명상을 해왔던 그 꽃을 그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절화의 아름다움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키워드에 너무 합당하기 때문이었다. 뿌리가 살아있지 않아 물에 의존하여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이 꽃은 점점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우리에서 점점 피어나 만개한 순간도, 점점 시들해 말라가는 그 모든 그 순간이 소중하다.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에 우리의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그 각각의 모든 시간 속 내 존재의 소중함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매주 다양한 꽃을 데려오면서도 느낀다. 아 각각이 그저 아름답구나.
인간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모양새와 색이, 냄새가 그냥 아름다울 뿐이다.
우리는 매 순간 너무도 아름다운 꽃들이다.
자, 이 어려운 의미를 어떻게 그림에 담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머리에 쥐가 나는 듯했다. 그래서 우선 내 방의 따뜻한 노란 불빛과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붓꽃을 그리기로 했다. 붓꽃의 보라색은 인간의 에너지 센터 중 6번째에 해당하는 미간 차크라의 색이기도 하고 여러 영성적인 의미가 있는 색이다. 그래서 열심히 예쁜 보라색 붓꽃을 사진을 보면서 따라 그렸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갤러리에서 여럿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과 경험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함께 클래스에 참여한 사람들과 각자의 생각과 의도를 나누며.
어떤 분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어떤 분은 자화상을 그렸고,
어떤 분은 그냥 지금 드는 느낌을 그렸다.
우리는 그 발화되는 말이 손 끝으로 표현되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다.
그런데 다 그리고 보니 뭔가가 빠진 게 아닌가..? 이 꽃은 죽어가는 절화여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그래서 작가님과 옆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얘를 어떻게 죽일지 고민했다.
"작가님! 어떡하죠? 얘를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죽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 그럼 꽃 끝을 뭉게 버리면 어떨까요?" 심각하게 고민하시던 작가님의 제안.
그렇게 실컷 정성 들여 그린 붓꽃의 형태를 검은색으로 덧칠을 해서 죽여버리자는 결론이 나왔다.
열심히 그린 꽃의 가장자리를 검게 녹고 있는 죽음의 색으로 다시 물들였다.
그 과정을 지켜본 분들과 함께 탄성을 질렀다.
"아... 맞네요. 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꽃이 맞아요."
아름다운 것을 죽이는 과정. 죽음 입힘으로써,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하는 절화가 그렇게 완성되었다.
죽어가고 있는 절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의미의 그림.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내면에 소중할수록 더욱 조심스럽고 망가질까 두려운 원함, 꿈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만약 학원에서 그림을 시작했더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과 경험이었을 거다. 그 그림을 그린 작업부터 완성까지 너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클래스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며 완성한 내 15년 만의 첫 그림.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렇게 그림이라는 산을 넘어가게 되었다.
+
그리고 2년 뒤, 이 그림은 해당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됩니다.
'전시하기'도 제 버킷리스트에 포함이 되어있었는데
실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언젠간 전시를 하겠구나 라는 걸 느낌으로 알고 있었어요.
느낌으로는 아는데 머리로는 말이 안 되는 느낌.
전시 이야기는 스토리 연재 이후 따로 추가하겠습니다 :)
- 계속